이제 저도 포스팅거리가 어려워서 이런 글를 씁니다. (쓴다기 보다는 CTRL+V 인가?)
저도 이글을 본것은 무척 오래 되었읍니다 .. 다만 크게 관심 두지 않았읍니다.
바로 일단 밍키다카라다 이라는 필명을 가지신 밍키모모 팬이 운영하는 웹페이지 http://hp.vector.co.jp/authors/VA008023/momo.htm에 1996년 10월경에 올리신글 입니다.
해당 홈페이지 입니다 (위 내용은 질문 사항인데 진짜 밍키모모를 좋아하는 사람만 들어오라는 뜻인것 같읍니다)
위 내용중 제일 아래 칸의 왼쪽의 팬던트를 눌러 주시면 됩니다.
이 분이 자기의 밍키모모의 대한 생각를 정리하여 올려 놓은것인 데 논문까지는 아니고 밍키모모를 좋아하는 이른바 정통파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할수 있읍니다. (저도 동감 합니다.)
우선 애기로는 한국의 산들바람님의 홈페이지(http://spagna.nayou.net/zboard/zboard.php?id=memory&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subject&desc=desc&no=5)에 허락를 받고 올린것이 퍼진것으로 알고 있지만 위 해당페이지로 가면 한국어판이 있는것으로 보아 맞는것 같읍니다. (지금은 클릭해도 해당 페이지가 없다고 합니다.)
우선 내용상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아 여기에 올립니다.
내용상 산들바람님 홈페이지에 있는 글 그대로 올리겠읍니다..
[제 목] 밍키모모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고백 -번역후-
밍키모모에 대한 논문은, 지난번에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우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밍키모모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TV시리즈가 두 개, 극장판이 몇 개 있습니다. 그 중 TV시리즈는 82년판과 91년판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시리즈는 전혀 연관성이 없고, 나오는 모모도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따라서 91년판 밍키모모에서 두 모모가 동시에 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82년판 모모는 훼나리나사라는 곳에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되찾아 주기 위해 지구로 옵니다. 반면 91년 모모는 마린나사라는 곳에서 오는데, 이 시리즈를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내용은 모르는 상태입니다.
82년판 '요술공주 밍키(魔法のプリンセスミンキ-モモ)'에서는 모모가 하늘의 훼나리나사에서 왔기 때문에, 모모를 하늘모모(そらモモ)라고도 하구요, 혹은 초대(初代)모모라고도 합니다. 91년판은 그와 달리 바다에 있는 마린나사에서 왔기 때문에, 바다모모(うみモモ)라고 합니다.
제가 번역한 논문은 82년판 하늘모모에 대한 것입니다. 필자는 82년 당시 대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접하고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군요. 사실, 이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본다면, 약간(아니 많이) 맛이 간 인간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러나,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 봤기 때문에, 그 작품의 깊은 맛을 느끼지 못했던 저는 이 글을 번역하면서 새삼스레 그때의 그 장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고, 그리고 조금은 필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글에서도 나오는데, 하늘모모 이야기는 46화에서 사실상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방영 연장으로 그 뒤 새로 태어난 아기모모의 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국내 방영분에서는 이 부분의 방영이 불규칙적이었고, 끝까지 방영되지 않은 걸로 압니다. 아니 다 방송했을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저는 끝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모는 죽었고 그 뒤 다시 모모가 태어났는데 어째서 12살의 모모가 다시 나오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 모모는 누군지. 그러나 결코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 기회는 없었고, 그렇게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몇 년전, 하늘모모 이야기를 다시 찍어 판다는 얘기를 접하고서, 그 궁금중을 풀기 위해 하늘모모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번역하면서, 그 모모는 아기모모의 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필자처럼 다 큰 뒤에 하늘모모 이야기를 봤다면, 저도 필자 못지않게 슬퍼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필자 이상으로 맛이 간 인간같이 행동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 그러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에 하늘모모를 만났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인간으로 자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건데, 당시 모모가 트럭에 치이는 장면은, 이 글을 번역하던 그 순간까지 잊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순간 다시 선명하게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모모의 죽음은 너무나 큰 충격이어서 그동안 기억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건데, '재밌지만 심각한 이야기'라는 애니메이션 틀은 이 하늘모모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나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또다른 애니메이션 나디아도 '유머러스하지만, 중간중간 심각한 이야기가 나오다, 결국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는 엔딩을 갖는 이야기'입니다.
훼나리나사가 강림할 때까지 모모를 생각하며 꿈을 갖자고 하기에는 우리세상이 너무 험난하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으면서 아직 순수한 사람은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은 언제나 스쳐지나가는 산들바람..
by Breezy Ung
밍키모모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고백
원작논문 : 나는 밍키모모를 좋아한다.
요 약
본 논문은 나와 밍키의 관계를 통해 "밍키 모모"의 세계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철학을 보여 주고 있다(역주: essential을 essencial로 오기한 바람에 역자가 꽤 애먹음). 내 인생은 밍키모모로 인해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내게 그렇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나에게 '꿈을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역주: 필자는 영문법을 거의 무시하고 있음. her die가 아니라 her death이라고 해야.. 처음에는 무슨 느닷없는 주사위가 나오길래, '그녀의 주사위는 나에게 ...하게 했다'라고 해석할 뻔). 내 인생은 밍키모모라는 존재와 더불어 바뀌었다(원문을 직역하자면, '내 인생은 밍키모모와 함께 걷기 위해 변했다'이지만, 역시 필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라, walk with god에서 god 대신 Minky Momo를 넣음으로써, 밍키모모가 필자의 인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였고, 그래서 필자의 인생은 바뀌었다는 뜻인 듯). 그녀는 언제나 내 마음에 살아있다(역주: 영문법을 이렇게 많이 어기고서도 뜻이 통할거라고 생각한 필자를 역자는 존경한다. 만약, 일본어를 모르는 영어권 인종들이 본다면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를 것이 확실하다).
머릿말
밍키모모가 방영된지 벌써 15년 정도가 흘렀다. 갓난아기였던 모모도 이미 고교생(역주: 국내 방영분에서는 밍키라는 이름으로 통했지만 일본에서는 모모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91년 방영된 신밍키와 구별해서, 82년 모모는 하늘모모(そらモモ)라고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훼나리나사가 강림할 날까지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더많은 사람들이 꿈을 잃어버렸고, 그들은 아직 훼나리나사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본 논문에서는 나와 모모의 관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조금이라도 훼나리나사가 강림할 때를 위해 마음의 준비를 갖출 수 있도록, 모모와 꿈에 대하여 보여주려 한다.
본 논문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은 밍키모모를 상당히 잘 알 것이라 상정하고 있으므로, 모모팬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용어 등에 대한 일체의 설명은 생략한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가까이 있는 모모팬에게 물어보든지, 참고문헌을 조사하기를 바란다.
1. 만 남
나는 그 당시까지 이런 종류의 마법소녀 애니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어렸을 때는 '요술공주 샐리(魔法使いサリ-)'도 보았고, '마술같은 마코(魔法のマコちゃん)'라든지 '꼬마마녀 치클(魔女っ子チックル)'도 가끔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초중등학생이 TV를 보는 수준이어서 무슨 특별한 감정도 없었고, 방송이 끝난 다음에는 거의 생각하지도 않을 정도라고 할만한 애니들이었다.
밍키모모가 방영되던 시기에 나는 대학생이었다. 당시 나는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戰艦ヤマト)'에 푹 빠져 있어서, 야마토 팬클럽에 전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코미케(コミケ)같은 곳에서 다른 팬클럽과 교류도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애니를 보기도 했다. '마법소녀 라라벨(魔法少女ララベル)'같은 애니는 단순히 堀江美都子(호리에미토코?)가 부른 노래를 듣기 위해 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비주류 방송국(역주: 마이너한 방송국이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케이블TV나 지방방송처럼 공중파 3사를 제외한 나머지 떨거지들을 모아서 마이너라고 한 듯)에서 방영되던 밍키모모는 알지도 못했고, 방송이 중반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 회원 중 한 사람이 가르쳐 주었다. '밍키모모라는 애니가 꽤 재밌던데요'. 나는 '그게 무슨 애니일까?'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가르쳐준 시간에 TV를 켜봤다. 그 때 방송된 에피소드는 제21화 '스파이 모모 위기일발(00モモ危機いっぱい, 역주: 007 위기일발의 패러디)'이었다. 불행하게도 당시 작화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모모라는 캐릭터에게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줄거리는 뒤집어질 정도였다. 또한 애니 구석구석에 많은 패러디가 박혀있어서, '이건 아동용 애니의 모습을 가장하고 있지만, 진짜 걸작일지도 모르겠는걸'이라고 애니 팬의 후각이 가르쳐 주었다.
제21화 '스파이 모모 위기일발 의 한 장면
1주일을 기대하며 기다렸다가 본 그 다음주 에피소드는 '스파이 모모는 승리암호(00モモは勝利の暗號)'였다. '여전히 장난스런 타이틀이군'이라고 생각하며 보있는데, 모모가 구르메포포(グルメポッポ, 역주: 모모가 몰고다니는 분리합체형 승용차 겸 비행기)에서 비밀병기를 꺼낼 때 신드북(シンドブック, 역주: 모모를 따라다니는 세 동물 중 한마리인 듯)이 '어라? 그런게 있었나?'라고 말하자, 모모는 아니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은채 '웬지 모르지만 그냥 있는거 같애'라고 일부러 적당주의를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나는 황당했다. '뭐 이런 능청스런 애니가 다 있어?'. 그러나, 이로 인해 밍키모모라는 작품의 파장으로 점차 빠져들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밍키모모를 놓칠 수는 없었다. 매주 필사적으로 보면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간혹 모모를 아동용 마법소녀물로 오해한 일부 스탭에 의한, 맛이 간 에피소드도 있었다는 점이 옥의 티랄까. 그러나 진지한 제작진이 만든 에피소드는 훌륭한 것이었다.
특히 연말에 방영된 42화 '실수연발 대작전(間違いだらけの大作戰)'은 예고편에서부터 '코난'의 패러디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올해 최후의 엄청난 개그를 한방 먹일 생각인가보군'이라며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본편은 기대 이상이었다.

42화 '실수연발 대작전 (핵 미사일 탑재한 폭격기 애기 입니다.)
진행속도도 좋았고 내용도 재밌었다. 거의 계속 웃어대며 보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박사의 이상한 애정(博士の異常な愛情)' 패러디가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그 다음 회인 '언젠가 왕자님이(いつか王子さまが)'는 여태까지와 작품의 분위기가 약간 다르고 스토리 자체 구성완성도가 높아서, '스탭진의 소원이 깃들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감동하며 보았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전후해 兵頭敬씨가 그린 작화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모모라는 캐릭터 자체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 시작했던 20화 전후가 마침 밍키모모의 황금기에 해당할 것이다. 지금 다시 보아도 당시에 스탭진이 계속 추가되었고, 평균 이상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몰려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딱 좋은 시기에 밍키모모를 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밍키모모라는 작품을 보는 내 시선은 잘못되어 있었다. 그저 능청스러운, 그리고 매니아에게 재밌을 만한 소재를 제공하는 작품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 제45화 '마법이 사라진 날(魔法の消えた日)'과 제46화 '꿈의 훼나리나사(夢のフェナリナサ)'는 내가 밍키모모를 보는 시각뿐만 아니라, 내 인생관에도 커다란 충격을 던질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2. 충 격
제45화는 초반부만 볼 때 이것이 특별한 에피소드가 될 것이라는 걸 예상할만한 것이 없었다. 피터 아저씨가 나오고, "말을 하는 동물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대사를 들었을 때, 나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했기 때문에, 그 다음 약간의 대사를 놓쳐버렸던 기억이 있다. 나도 그런 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 미국 몰래 카메라에서 마굿간에 있는 경주마에 소형 스피커를 단 다음, 말이 말할 줄 아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음 레이스의 순위를 가르쳐주었는데, 몇 사람이 속았었다.
나라면 이런 방법에는 속지 않는다. 이야기하는 말의 눈에 지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동물이 지성적인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걸어 온다면, 약간의 공포를 느낄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뛸뜻이 기쁠 것 같다. 나도 꽃속의 요정, 말하는 동물의 존재를 이성으로는 부정하지만, 그 존재를 끊임없이 찾고 있었던 것이다.
팬던트가 총에 맞는 순간, 상황이 급진전되는 것에 놀랐다. 모모가 '안돼...'라고 소리지를 때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뒤에 피터 아저씨가 총에 맞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 조금 비정상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온 이 마음씨 착한 사람이, 왜 되먹지 않은 이따위 인간들에게 당하지 않으면 안된단 말인가. 현실에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모모'라는 이야기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쫓기듯이 신드북 일행까지 잡혀간 후, '도대체 왜 이런 일이...'라는 모모의 대사가 나의 마음을 얼려버렸다. '왜 모모가 이렇게 상처받아야만 하는가'라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사실 마법을 잃어버린 모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평범한 12세의 소녀일 뿐이다. 악에 대항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지니지못한.

제45화 '마법이 사라진 날
그 때 갑자기 모모의 숨겨진 힘이 발휘되었다. 사건은 해결되었고 급하게 전개된 해피엔딩을 맞았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회인 46화로 잇기 위해 사건을 해결한 首藤剛志(역주: 아마 감독인듯, 이하 스토 감독)의 사악한 연출이라는 사실을, 그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드디어 46화가 시작되었다. 조용한, 여느 날과 다름 없는 아침에서 시작했다. 다른 때와 다른 것이라면 팬던트가 없다는 것 정도였다. 팬던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모의 '뭐, 괜찮겠지'라는 대사는 모모다운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해 주었고, 나는 그런 모모를 좋아한다. 모모처럼 낙관주의자인 나도 조금 황당할만큼 모모는 느긋했지만, 그처럼 소중한 팬던트를 잃어버렸는데도 기분전환을 하려는 모모가 너무나 안쓰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야기는 그채로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그런 조용함은 예전의 에피소드와 다른 것이어서 이상하다고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임금님이 '오늘은 너무 조용하구낭~(역주: 이 임금님은 엄청나게 촐랑거리기 때문에 이렇게 번역)'라고 말하는 순간, 무언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미 모모라는 작품에 몰입해 있던 나는 방송 중에 말로써 연출효과를 설명할 때, 그것이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당돌함으로 다가왔다.
'아악!'이라고 생각할 새도 없이, 트럭의 그림자가 모모의 그림자를 덮는 순간,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설마'라는 생각이 작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끊어버리려는 것처럼, 검은 띠를 두른 모모의 사진이 비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상을 여기서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으므로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어쨌든 그 순간 이후, 나의 사고는 정지하였고, '모모'가 끝났음에도 그 상태로 망연해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TV의 리모콘을 우연히 누르자 NHK교육방송의 음악프로그램이 나왔는데, 우연히도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 곡이 그 당시 내 심경에 너무나 딱 들어맞는 곡이라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었다.

제46화 '꿈의 훼나리나사
3. 모모라는 존재
여기까지 읽은 사람 중에는 '가공의 인물한테 무슨 바보같은..'이라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고 감동하는 것도 부정할까? 사람은 드라마나 소설을 보고 깊이 감동하며 눈물흘린다. 어차피 만들어진 이야기인데도. 그런데 신문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기사를 본다 해도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쌍하다고 생각할지언정 슬퍼하지는 않는다. 어떤 때는 가공의 인물에게 마음깊이 감정이입을 하고, 어떤 때는 실제 인간의 죽음에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그 인물에 대해 얼마만큼 잘 아는가, 그 인물이 얼마만큼 자기 자신한테 중요한가의 차이 때문 일것이다. 즉,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존재를 자신과의 관계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는 그런 평가 중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식할 때, 텔레파시를 할 수 없는 한 그 사람의 내면이나 인격 등 그 사람을 완전히 인식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의 행동, 발언을 종합하여 자신이 느끼는 그 사람의 인상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잘 안다는 것은, 그런 정보의 양이 많다는 것 뿐이지 그 사람을 완전하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바라본 그 사람을 인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서는 관측불가능한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쉽게 얘기하자면 아무리 노력해도 관측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 생각해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을 인식할 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직접 관측할 수 없는 이상, 다른 사람의 자아라는 존재를 생각한다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가볍게 취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바라본 타인의 인식이라는 것은 그것이 실재하는 인간의 것이든 가공인물의 것이든 관계없이 그것에 의한 결정적 차이는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즉, 예를 들어, 내 이웃집에 모모라는 귀여운 여자애가 살고 있으며, 그 애가 자주 놀러 오기 때문에 잘 안다고 하자. 그 애는 아주 명랑해서 그 애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듣는 사람까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 애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 애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알아차리면서 너무나 소중한 팬던트를 잃어버렸고, 그리고 사고로 죽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애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을 비웃는 것은 참을 수 없으며, 눈물흘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을것이다. 모모는 내게 실재하는 인간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에 아직 학생이었지만 내 딸과 같은 존재였다. 그 때부터 15년이 흘러 지금은 딸을 가진 아버지가 되었지만, 지금 심정으로 되돌아본다 해도 그때 내 감정은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과 거의 같았다고 생각한다.
모모가 죽은 후, 며칠이 지나도록 나는 멍해 있었지만, 탄식만 한다고 해서 모모가 되살아 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모모가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없다는 생각에, TV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모모의 흑백사진을 두고 매일 인사한 다음 외출하고는 했었다(역주: 불교의 영향인지, 일본에서는 죽은 사람에게 '공양'을 해야만 죽은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만약 공양을 해 줄 사람이 없다면 죽은 사람은 계속 이승을 헤매다가, 마침내 자기 손으로 자기를 공양해서 간신히 저승으로 간다고도 한다)
4. 모모의 죽음
그 때까지 밍키모모의 세계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던 적은 두 번 있었지만 이야기 중에 직접 죽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았다. 밍키나사(역주: 밍키가 조종하는 거대로봇)가 파괴해서 폭발해버린 메카 속에 있던 스루멧치 두목조차, 그 이후 도망치는 장면을 일부러 만들어 보여주기까지 했으니까. 그럴 정도였는데 주인공인 모모가 왜 죽지않으면 안되었단 말인가. …그 이유는 사고 후 임금님과 밍키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서 잠시 인용한다면…
"꿈이나 희망은 스스로 얻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받을 수 있는 것도, 다른 사람한테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모모는 모모의 꿈을 꾸고 싶어요. 꿈나라 공주의 꿈이 아니라, 진짜 모모의 진정한 꿈을.."(夢や希望は自分で持つものでしょ.人からもらうものでも,人にあげるものでもないわ.··私は私の夢を見たいわ.夢の國の私の夢じゃなくて,本當の私の本當の夢). 즉, 모모는 여태까지 자기가 했던 일들을 부정하고, 꿈은 스스로 얻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스토감독이 모모의 입을 통해 시청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만약 밍키모모라는 이야기가 46화에서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꿈을 되찾아 주고, 그래서 최후의 보석(ハッピ-ティア, 역주: 밍키가 '착한 일'을 하면 훼나리나사에 있는 왕관에 보석이 하나씩 박힌다. 그때 박히는 보석 이름인 듯)이 박히고 훼나리나사가 강림했다면 어땠을까.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모모로 인해 꿈을 되찾은 사람은 많아야 수십명에 불과하므로,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에 갇힌 세계의 이야기에 머무르게 된다. 그렇게 끝을 맺었다면 다른 애니와 마찬가지로 밍키모모도 단지 TV에 나오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밍키모모라는 이야기는 최후의 보석을 시청자의 손에 맡겼다. 표면상으로는 다시 태어난 밍키모모에게 맡겨진듯 하지만, 인간이 된 모모라는 존재는 시청자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것은 TV를 보고 있던 사람이 스스로 꿈을 가지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것은 46화 끝부분의 예고, "어쩌면 당신 곁에 모모가, 아니 당신 자신이 모모일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모모 엄마의 대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모모의 대사 중 "진정한"이라는 단어는 현실세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모모는 현실세계에 사는 사람한테 이야기 속의 꿈을 심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세계의 사람들이 스스로 꿈을 가지도록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써 모모가 시청자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죽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가 전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처럼, 모모는 전인류의 꿈을 위해 죽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니 꿈을 잃어버린 생활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자신도 모모를 죽음으로 몰고간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모가 너무나 불쌍하다. '그래, 나 자신은 모모를 위해서라도 꼭 꿈과 희망을 지닌채 살아가자'. 이렇게 결심하면서부터 나는 모모의 죽음을 극복하였다. 이 결심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모모의 사진을 꾸며놓고 매일 인사하며 자신의 결심을 재확인하였다. 만약 모든 세상사람 마음이 이렇게 꿈과 희망으로 넘친다면, 정말로 이 세상이 훼나리나사가 될 것이다. 밍키모모라는 이야기는 이렇게 이야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실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모모의 죽음 뒤에 이어지는 아기 모모의 꿈이야기는 매우 잘 만들어져 있다(역주: 국내 방영분에서는 임금님과 왕비님이 훼나리나사 궁전의 연못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주은 뒤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어찌된 사정인지 전부 방영되지 않았다. 역자 자신도 이부분을 끝까지 못본게 한이 되어, 결국 밍키모모 이야기를 전부 수집하게 되었다. 본문에서 유추하건데, 그 보석들은 아기로 다시 태어난 밍키의 꿈이 결정체로 바뀐 것인 듯). 제작 뒤의 숨겨진 이야기에 의하면, "실수연발 대작전(間違いだらけの大作戰)"을 전후해서 밍키모모 종영이 결정되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 이야기에서만 한꺼번에 2개의 보석이 빛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종영을 향했지만, 이번에는 갑자기 방송연장이 결정됐다. '이기 뭐 이런게 다 있노'라며 황당해하던 스탭진이 고육책으로 생각한 것이 나쁜 꿈(역주: 惡夢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야기 전개상 사람들의 미래의 꿈을 해치는 나쁜 꿈이라는 해석이 더 어울릴 듯)과 싸우는 아기 모모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들은 '과연 스토감독이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잘만들어졌다. 꿈을 지닌채 살아갈 때 나타나는 어려움과 고통을 표현하면서, 세상사에 몸을 맡긴채 그럭저럭 살아가는게 아니라 진정한 꿈을 지닌채 살아간다는게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시청자에게 말해주고 있다. 아기 모모 이야기는 모모의 꿈을 모방한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세계에 대한 충고이지 밍키모모 세계의 이야기는 아니다. 결국 꿈의 나라의 공주 밍키모모는 46화에서 죽었던 것이다.
5. 내 마음속의 모모
모모는 이렇게 내 마음속에 살고 있다. 나는 언제나 모모와 함께 있었다. 모모팬임을 공언하는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당시 나는 대학과 대학원 시절 모두 응원단도 아니면서 겨울에 학생복을 입고 다녔다. 그 옷 속으로 모모의 데춈파(デチョンパ, 모모의 팬던트인데, 속은 시계로 되어있다)를 목에 걸고, 주머니에는 "언젠가 반드시(いつかきっと)"라는 모모이야기 책을 넣고 다녔다. 동급생들이 몇번이나 "그따위 모습 좀 집어쳐라"고 말했지만, 관서지방 근교에서 멍청이의 대명사로 통하는 "사카오 패션"(역주: 大阪를 거꾸로 읽은 말인 듯)을 입고 다니는 놈들한테 그런 소릴 듣는다는게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또한 공학부에 다니던 우리들은 실험용 가운을 가지고 있었는데, 등부분에 염료로 커다란 밍키모모 그림을 그려서 그 가운을 입은채 캠퍼스를 종횡무진하다가 시험보러 온 수험생을 놀래킨 일도 있었다. 물론 저녁 식사는 모모 재방송 시간에 맞췄고, 그 모습으로 식당에 가서 TV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모모를 보면서 식사를 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들은 얘기로는, 뒷 모습을 보니 TV화면과 동일한 옷을 입은 녀석이 TV에 들러붙어 있는 통에, 뉴스를 보고 싶어도 무서워서 채널을 돌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강의 노트는 내가 직접 만든 모모 노트였고, 설계제도 시간은 "모모의 공부 세트(モモのおべんきょうセット)"에 들어있는 연필과 잣대로 도면을 그렸으며, "패턴인식론" 강의 레포트에는 모모의 작품별 얼굴 패턴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제출하고 교수를 감동시켜 '우'를 받았다(역주: 교수는 감동한게 아니라 황당했을 거라고 생각됨). 그리고 연구용 전자현미경에는 모모 인형을 붙여두었고, '모모가 해설하는 대학원 시험 문제출제 경향과 대책집'을 작성하였는데 이것들은 지금도 기계공학과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밖에도 일일히 꼽을 수는 없지만, 학생시절 나는 모모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코미케에 갔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표지에 모모 그림이 그려진 동인지가 눈에 들어왔다. 내심 '어이구, 동지일세'라고 생각하며 동인지를 펼쳐 들었다가 기겁을 했다. 거기에는 모모가 옷을 벗은채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보다 더한것도 있으나 사정상 약한 표현만 보여드립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따위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몰랐던 것이다.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이놈들은 밍키모모한테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 뿐더러, 모모를 희롱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시사회였다면 살려보내지 않았겠지만 법치사회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책을 책상에 집어 던지면서 "니들 변태냐"라고 말하며 노려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놈들은 내가 째려보는데도 능글맞게 웃을 뿐이었다.
성서에서는 "여성에 대한 음란한 상상만으로도 실제 행동과 똑같은 죄를 범한 것이다"라고 한다. 매우 고상한 사고방식이라 생각한다. 나는 기독교나 다른 종교를 싫어하지만, 성서에는 가끔 좋은 얘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성서에 나오는 그 말은, 그런 행동을 생각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죄를 범하고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된 여성 자신은 전혀 능욕당한 것이 아니다. 현실의 여성이라면 그렇다. 하지만 가공의 인물은 다르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가공의 인물은 자기 마음 속에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약하고, 깨지기 쉬우며, 자기 생각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정말로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 놈들 마음속에서는 모모가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그놈들은 자기 자신에게 죄를 범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모모를 희롱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변태 로리콘을 매우 싫어한다. 모모팬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 놈들과 똑같이 취급당하는 것이 너무 슬프다. 내가 어떤 평가를 받든 상관없지만, 밍키모모라는 작품이 그 놈들 때문에 일부에서 '그런 종류의 작품'으로 취급되는 것이 슬픈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손쓸 수도 없는 처지이고, 그 놈들은 그 놈들의 길을 걸을 것으로 생각된다. 계속 그 짓이나 하다 지옥으로 떨어져라.(역주: 이런 발언은 논문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는 문구이지만, 원문에 있으므로 옮긴다)
6. 결 론
내 안에는 언제나 모모가 있다. 모모는 언제나 내가 가야할 길을 가르쳐 준다. 나는 모모가 말해 준대로, 꿈을 갖는 인생을 선택했다. 꿈이라 해도, 복권을 사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은 모모가 가르쳐준 꿈이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붙잡는 것이 모모가 가르쳐준 꿈이다. 물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자기만의 꿈을 꾼다면, 그런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런 결심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 훼나리나사가 강림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모모는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나는 밍키모모를 좋아한다.
맺음말
밍키모모는 너무나 무거운 주제를 가진 작품이지만, 또한 너무나 재밌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밍키모모라는 작품을 좀 더 깊이있게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더 재밌기를 바란다. 밍키모모는 농담의 세계이기도 하다(역주: シャレ는 익살, 말장난을 뜻한다. 비슷한 발음이 나는 말들을 엮어서 웃음을 유발하는데, 이 때문에 일본 개그물은 번역하기가 까다롭다고 한다).
그래서 모모팬들과 함께 밍키모모를 즐기기 위해, 패러디도 그려보고 모모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즐거워 한다(역주: 이 글이 올라온 홈페이지에 대한 언급인 듯). 이 멋진 밍키모모라는 작품을 좀 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 그것이 훼나리나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지구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감사의 말
밍키모모라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준 首藤剛志감독, 湯山邦彦씨, 芦田豊雄씨, 兵藤敬씨, 小山末美씨(역주: 앞의 스탭들은 하나도 모르지만, 코야마 마미씨에 대해서는 조금 알기 때문에 부연설명. 마미씨는 80년대 일본의 유명한 성우로써, 닥터슬럼프의 아라레, 그리고 이 밍키모모의 모모역할을 했으며, 당시에 성우로써는 드문 미모의 소유자였다고 함. 외모가 궁금하다면 닥터슬럼프 15권 - 18권에 나오는 캐리커쳐를 보기 바람)를 필두로 모든 스탭들에게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이글 이외에 바다 모모에 대하여 이사람이 쓴 글이 있읍니다 (역시 이내용 또한 저도 공감가는 글이라 여기서 소개 하겠읍니다.)
* 실제 이글은 2007년 06월 26일 포스팅 했다가 다시 올려드리는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