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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앞 도로에는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공시생들을 위한 저렴한 식사를 내다 판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21

 

[표지이야기] 책장도 소리 없이 넘겨야 하는 젊음의 유배지, 노량진 고시촌…

공무원 되려고 인간관계도 끊는 100 대 1 경쟁사회

 

때가 되면, 백로는 대만·필리핀의 땅을 문득 박차고 한반도에 날아왔다. 그 무리의 일부가 서울 땅 수양버들 울창한 노들나루에 내려앉았다. 백로가 오면 봄이 왔다는 이야기다. 강의 두꺼운 얼음장이 다 녹았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배를 띄우고 나무다리를 놓았다. 강의 북쪽은 임금의 땅, 남쪽은 백성의 땅이었다. 사람과 물자는 오직 이곳으로 북과 남을 오갔다. 급제를 꿈꾸는 삼남 지방 선비들도 이 땅을 밟고 나룻배에 올랐다. 가을이 오면, 백로는 남쪽을 향해 먼 하늘을 되짚어 돌아갔지만, 사람들은 흰 깃털의 고고한 새를 잊지 않고 땅 이름에 새겼다. 노량진은 백로(鷺)가 나무다리(梁) 주변에서 노는 나루터(津)라는 뜻이다.

이제 백로는 노량진에 오지 않는다. 나무다리는 한강 최초의 현대식 다리인 한강철교가 밀어냈다. 나루터는 사라지고 다리를 따라 기차와 자동차가 오간다. 다만 나라의 녹을 받으려는 현대판 선비들만 여전히 이 땅을 분주히 오간다. 오늘의 선비들은 고고하지 않다. 공맹의 이상보다 먹고사는 일에 목숨을 건다. 7·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그들은 스스로를 ‘공시생’이라 부른다. 노량진역 주변에는 이들을 위한 학원·고시원·독서실 등이 밀집해 있다. 전혀 다른 세상, 별천지다.

경쟁자의 숨결을 느끼기 위하여

별천지라도 음풍농월과는 상관없다. 노량진은 거친 땅이다. 유배지다. 젊음의 호르몬을 꽁꽁 묶어 스스로 유배시키는 땅이다. 유배지의 중심지는 학원이다.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앞, 왕복 8차선 도로를 따라 적어도 20여 개의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이 있다. 몇몇 대입·편입 학원을 빼고도 그만큼 많다. 동서를 따라 1km에 걸쳐 늘어선 학원 건물들은 노량진의 첫 껍질일 뿐이다. 껍질을 벗겨 뒷골목, 그리고 다시 뒷골목으로 가면 대형 학원의 분점과 소형 학원들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민다. 그들을 모두 더한 수가 얼마인지 짐작조차 어렵다. 줄잡아 100여 개의 학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웅진패스원·남부행정고시학원·이그잼고시학원·베리타스 등이 ‘노량진 빅4’로 통한다. 이들 학원이 노량진 공시생의 대부분을 품는다.

학원 강의는 오전·오후·야간으로 나눠 열린다. 각각 3시간씩 진행된다. 강의 시작 1시간 전부터 강의실 앞에 줄이 생긴다. 일찍 온 순서대로 제 가방을 놓는다. 어떤 이는 가방 옆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강의 시작 때까지 쭈그려 앉아 공부한다. 인기 좋은 강의는 그 줄이 학원 비상구 계단까지 이어진다.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야단법석이다. 어떤 강의에는 500여 명이 몰려든다. 그 정도 되면 학원이 나선다. 한 달에 두 차례, 학원 상담실에서 번호표를 나눠준다. 유효기간은 2주다. 번호표 1번을 받으면 2주 동안 가장 먼저 입장할 수 있다. 다만 그 번호표를 받으려면 또 줄을 서야 한다. “번호표는 아침 7시10분부터 배부한다”고 학원 게시판에 공지돼 있다. 오후 강의를 위해 새벽 줄서기를 감내해야 한다.

늦게 도착하면 강의실 뒷자리에 앉는다. 그들은 강사의 얼굴을 TV로 본다. 넓은 강의실엔 평면TV 모니터가 여럿 설치돼 있다. 2년6개월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김철수(29·가명)씨는 “앞자리와 뒷자리의 분위기가 다르다”고 말한다. 1시간을 기다리더라도 강의를 집중해 들어야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까짓 뒷자리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편에 앉는지에 따라 강의는 완전히 달라진다. “공기 흐름이 다르고 내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김씨는 말했다. 강사의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경쟁자의 숨결을 감지하는 것이 앞자리 다툼의 본질이다. 수험생들은 강사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경쟁자에 대한 경계심으로 3시간짜리 강의를 버틴다.


공무원 시험은 간판과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으니 좋은 일이긴 한데, 그 때문에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7·9급, 국가·지방직 등을 아울러 14만여 명이 응시한 올해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직능별로 60~100 대 1에 이르렀다.

강의 시간엔 웃음기가 없다. 우스갯소리를 해야 인기 강사가 된다는 건 대입 학원의 이야기다. “…우리 세법에선 이 문제를 처분소득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그죠? 아시겠죠?” 복도까지 흘러나오는 세법 강사의 말마다 “우리 세법”이 자주 등장한다. 세법을 공부하겠다는 목적으로 뭉친 공동체는 웃음 없이 마른기침만 가끔 내뱉으며 수업에 몰입했다. 7·9급 행정직을 중심으로 세무·통신·전산·토목·기계·농업·계리·화공·간호 등 다른 직능 공무원 시험의 과목이 학원 강의실마다 제각각 진행된다.

외환위기가 부른 노량진의 중흥기

노량진에 오면 적어도 반년 동안 이런 학원 수업을 듣는다. 9급 행정직 공무원 시험의 경우, 국어·영어·행정법·행정학·국사 과목을 치른다. 7급은 여기에 경제학·헌법이 추가된다. 이들 과목을 모두 묶어 강의하는 ‘종합반’ 수업이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월~토요일 이어진다. 두 달 코스를 마치는 데 60만원을 낸다. 종합반을 끝내면 부족한 과목을 골라 ‘단과반’에 등록한다. 보통은 5~7과목을 모두 신청해 듣는다. 한 과목당 매주 2~3일 동안 수업을 하므로, 최대 2과목씩 수강할 수 있다. 6과목의 단과 수업을 듣는 데 6개월이 걸린다. 과목당 20만원을 낸다. 단과 코스가 끝나면 ‘문제풀이 특강’ ‘이론 특강’ 등 한 달짜리 강의를 듣는다. 특강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10개월이 지나야 공무원 시험 준비의 한 바퀴를 돈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학교 휴학하고 노량진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고 조영희(32·가명)씨는 말했다. 삼수해 대학에 입학한 조씨는 졸업 무렵 이미 취업 연령을 넘겼다. 공무원 시험이 유일한 출구였다. 조씨는 다른 수험생 3명과 어울려 스터디팀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1명은 지방대 1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노량진에서 1년간 학원 수업을 들었다. 일종의 ‘워밍업’이었다. 그 지방대생은 노량진을 떠났다. 졸업 무렵에 다시 휴학해 노량진에 올 것이다. 올해 9급 국가직 공무원 시험의 최연소 합격생은 지방대 1학년 휴학생이었다. 그는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1년 동안 휴학하며 노량진에서 공부했다.

지방대 1학년 휴학생이 합격하는 시험을 명문대 졸업생들이 실패하기도 한다. 조씨가 아는 최고 명문대 경영학과 졸업생은 끝내 7급 시험을 포기하고 얼마 전 공기업에 취직했다. 간판과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으니 좋은 일이긴 한데, 그 때문에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7·9급, 국가·지방직 등을 아울러 14만여 명이 응시한 올해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직능별로 60~100 대 1에 이르렀다.

경쟁의 뿌리는 1997년 외환위기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람들은 갑자기 망하거나 쫓겨났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거듭된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부모가 자식에게 권하는 것과 그 자식이 스스로 마음먹는 것에 일치하는 바가 생겼다. 월급과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 일자리를 구하는 게 최고의 목표가 됐다. 7·9급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이 모인 노량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노량진의 중흥기였다.

노량진에서 사람들은 그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땅을 보고 걷는다. 화장 없는 얼굴에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매고, 슬리퍼·추리닝·파카 차림으로 혼자 걷는 여자들이 노량진에는 흔하다. 공시생 조영희씨는 “노량진에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노량진에 학원이 처음 들어선 것은 1970년대다. 박정희 정권은 강북 도심지역의 밀집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입시학원들을 사대문 밖으로 몰아냈다. 종로에 몰려 있던 대형 학원들은 새 땅을 구해야 했다. 사대문에서 가장 빨리 다다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노량진은 조선과 일제시대를 거치는 내내 교통의 요지였다. 1980년대 노량진은 대입 재수 학원가였다. 노량진의 위기는 1990년대 초반에 왔다. 군사정권이 끝나자 유명 영어학원 등이 다시 종로에 진출했다. 강남 학원들이 대입 시장을 주도했다. 노량진 학원가의 기력이 쇠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반전의 계기였다. 노량진 학원가는 대입 수험생 대신 공무원 수험생을 노렸다. 경제위기는 카드대란, 금융위기 등으로 이름을 바꿔 자꾸 찾아왔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노량진으로 자꾸 몰려왔다.

“점퍼 지퍼는 밖에서 열고 들어오세요”

노량진에서 사람들은 그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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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역 맞은편 동네는 학원 옆 고시원 옆 독서실 옆 다시 학원이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한겨레 김정효

 

않는다. 땅을 보고 걷는다. 화장 없는 얼굴에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매고, 슬리퍼·추리닝·파카 차림으로 혼자 걷는 여자들이 노량진에는 흔하다. 공시생 조영희씨는 “노량진에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나이가 많아 기업 취직의 때를 놓친 그는 노량진 바깥의 거리에서 불편하다. 무리에서 탈락한 느낌이 든다. 노량진은 다르다. 노량진에는 언젠가 무리에 합류하겠다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 그때까지는 추리닝을 입어도 슬리퍼를 신어도 상관없다. 누구도 돌아보며 비웃지 않는다. 노량진의 거리마다 비애 속에 평화가 흐른다.

그 평화는 대부분 고독과 관련이 깊다. 공시생들은 혼자 밥을 먹는다. 노량진 역 앞에는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다. 1500원짜리 김치볶음덮밥, 계란토스트, 꼬치구이 등을 판다. 비닐포장을 헤치고 들어가면 저마다 홀로 앉아 종이 그릇에 담긴 밥을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꾸역꾸역 떠먹고 있다. 대형 학원 지하에는 ‘푸드코트’가 있다. 김치·멸치를 버무린 1천원짜리 주먹밥이 있다. 고시원 주변에는 ‘고시 식당’도 있다. 한 끼에 3천원짜리 식권을 내는 뷔페식 식당이다. 끼니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 모습은 하나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혼자 먹는다. 포장마차 가운데는 ‘시험 합격운’을 봐주는 점집도 있다. 점쟁이 앞에 앉을 때라야 노량진 고시생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노량진에 가면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다”고 이민호(26·가명)씨는 말한다. 졸업까지 2학기를 남겨둔 이씨는 내년 봄부터 휴학하고 공시 준비에 전념할 생각이다. 그는 “다른 인생들과 격리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디가 끊어진 인간관계는 독서실에서 절정에 이른다. 월 11만원을 내면 칸막이가 있는 독서실의 책상을 쓸 수 있다. 노량진의 독서실은 금기투성이의 영토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과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 많다. 비닐봉지에 덧버선들을 담아 독서실 입구에 걸어두었다. 위에 안내문이 붙었다. “발뒤꿈치까지 감기는 이런 덧버선을 신고 다니세요.” 열람실 문에는 포스트잇이 여럿 붙어 있다. “발뒤꿈치 올리고 걸으세요.” 덧버선을 신어도 걸음마다 소리가 난다. “차가운 음료만 드세요.” 뜨거운 음료수를 마시면 훌쩍거리는 소리가 난다. “캔음료는 밖에서 따세요.” 딸깍거리는 소리가 방해된다. “점퍼·가방 지퍼는 밖에서 열고 들어오세요.” 지퍼 소리도 신경에 거슬린다. “담배 피우면 냄새 다 빠질 때까지 한참 있다 들어오세요.” 냄새조차 거슬린다.

그러나 끝내 이해하기 어려운 경고문도 있다. “책장 넘기는 소리 너무 싫어요.” 익명의 공시생은 극에 달한 신경질을 존댓말에 담았다. 책장조차 넘기지 못하면 공부는 어떻게 할까. 누군가 대안을 제시해뒀다. “책장 넘길 때 침 묻혀서 넘기세요.” 밀폐 공간에서 조용히 생활하면 작은 소리조차 스트레스를 준다. 옆자리에 사람이 앉는 순간부터 신경세포에 짜증이 솟구친다. 김철수씨는 “그렇게 변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중산층 부모가 없으면 엄두도 못낸다

몸과 마음이 지치면 잠을 자야 한다. 노량진의 공시생들은 고시원에서 잔다. 노량진 학원가 뒤편, 3층 이상 건물은 대개 고시원이다. 한 뼘 창문, 한 몸 누이면 꽉 차는 침대, 작은 책장이 딸린 책상, 작은 냉장고와 작은 에어컨 등이 갖춰져 있다. 침대를 제외한 모든 것이 한 팔 안쪽의 길이다. 일상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최소 단위로 사용하는 공간에 월 29만~35만원을 지불한다. 고시원 골목 사이로 아주머니가 리어카를 끌고 다닌다. “바퀴·개미 완전 박멸”이라고 써붙였다.

드물지만 하숙집도 있다. 방을 혼자 사용하고 아침·저녁을 먹으면 월 55만원을 낸다. 밥을 먹지 않고 잠만 자면 ‘공부방’이 되는데, 그래도 30만원은 내야 한다. 4평짜리 원룸은 고시원보다 깨끗하지만, 고시원보다 월등히 비싸다. 지상에 있는 원룸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 60만원이 든다. 지하 원룸은 같은 보증금에 월세 40만원이다. 최근에는 6~7명이 함께 자는 고시원이 생겼다. 2층 침대에서 잔다. 의외로 인기가 높다. 여학생들이 특히 좋아한다. 함께 자면 늦잠을 자지 않는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먹고 자고 공부하는 일은 고역이지만 인내만으로는 성취되지 않는다. 돈이 필요하다. “학원·독서실·식대 등으로 한 달에 60만원은 필요하다”고 조영희씨는 말했다. 고시원에서 지내려면 30만원을 더 보태야 한다. 노량진에서 국어 과목을 강의하는 강사 박경석(42·가명)씨는 “가난한 고학생은 노량진에 거의 없다”고 말했다. 7·9급 공무원 시험 합격에는 평균 2~3년이 걸린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짬이 아예 없다. 월 60만~100만원씩 2년 동안 후원해줄 부모가 없다면 노량진에 올 수 없다. 그보다 더 부자라야 3~5년씩 걸리는 사법·행정고시 준비에 뛰어들 수 있다. 노량진 공시생들은 중산층이어서 공시를 준비한다. 중산층밖에 안 되므로 사시·행시는 엄두 내지 않는다.

“이르면 1년 안에 합격하기도 하므로” 이민호씨는 7급 시험을 준비한다. “뭐든 빨리 합격하는 게 중요하므로” 김철수씨는 9급 시험을 준비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 직장을 구하고 싶다”는 데 있다. 학원 강사 박씨는 “부귀영화보다는 안정적 생활을 바라는 현실적 사고에 익숙한 중산층 자녀들이 노량진에 온다”고 말했다.

겨울, 노량진에서도 밀려난 사람들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철수씨는 2년6개월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9급 공무원 시험을 봤지만 모두 떨어졌다. 올해 초, 노량진 생활을 접었다. 이제 뭘 해야 하나, 김씨는 고민 중이다. 서울 명문대를 졸업했으나 나이가 많은 조영희씨는 내년까지는 7급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 생각이다. 얼마 전 40살 아저씨가 합격하는 것을 보고 힘을 얻었다. 서울 중위권 대학을 휴학할 계획인 이민호씨는 노량진에서 지낼 만큼 형편이 넉넉지 않다. 일본에서 돈 버는 어머니 곁에서 독하게 외롭게 공부할 생각이다. 2010년 10월 현재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7%다. 10년 만에 최악이다. 15~29살 청년층 실업자는 43만 명이 넘는다. 올해 7급 공무원 공개채용 경쟁률은 평균 115 대 1이었다. 5만여 명이 응시했다. 올해 9급 공무원 공개채용 경쟁률은 평균 82 대 1이었다. 1719명을 뽑는데 14만여 명이 원서를 냈다. 옛적 백로가 노닐던 땅에서 공시생의 무리는 2010년 겨울을 맞는다.

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노량진 공시촌, 신림동 고시촌

고시생 밀집도, 노량진 > 신림동

노량진 고시촌의 규모를 입증하는 수치는 많지 않다. 관련 자료를 빌려 추정할 뿐이다. 서울 동작구의 노량진 고시촌은 서울 관악구의 신림동 고시촌과 곧잘 비교된다. 신림동에는 사시·행시 준비생들이 모여 있다. 봉천동 등 인근 지역을 포함하면 신림동 고시촌의 규모가 더 크다. 그러나 동 단위에 밀집된 정도는 노량진 고시촌이 높다. 관악구에서 가장 많은 숙박·음식업 점포가 있는 봉천7동과 비교해도 노량진1동의 숙박·음식업점이 더 많다. 유흥가인 서울 대학로의 혜화동, 강남역 근처의 삼성동보다도 많다(표1 참조). 학원을 포함한 교육서비스 사업체의 상황도 비슷하다. 관악구 전체에 흩어진 학원은 노량진보다 많지만 노량진 학원은 노량진1·2동에 밀집돼 있다(표2 참조). 이는 인근 지역 유동인구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노량진역 주변은 20대의 공간이다.

그들 대부분이 공시생이다. 반면 신림역은 20대와 함께 30~40대 비중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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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1. 숙박·음식점업 사업체 수 / 표2. 교육서비스업 사업체 수 / 표3. 유동인구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