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생을 가치있게 사는 법 주식회사 장성군 책을 쓰다가 나누고 싶은 글이 있어 올립니다. 박목월 시인의 아들인 서울대 국문과의 박동규 교수님이 "인생을 가치있게 사는 법"이란 주제로 강연한 내용입니다. ***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법 *** 장성아카데미는 2004년 12월 말 현재 423회째를 맞이한다. 오는 강사마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보니 수강생들에게 큰 감동과 영향을 주었다. 그 중에서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심금을 울린 강연을 하나 선택했다. 서울대 국문과의 박동규 교수가 아버지인 박목월 시인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할 때 참석자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았다. 순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박교수가 1999년 2월에 156번째 장성아카데미 강사로 강연했던 내용의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황순원씨가 쓴 ‘소나기’라는 소설이 있다. 열 서너 살 먹은 아이들의 깨끗한 사랑 이야기다. 왜 배웠는가? 그것이 소설이라서 가르친 게 아니다. 그 깨끗한 어린아이들의 사랑을 가리킨 이유는 그 소설을 읽고 스스로의 사랑과 비교해서 사람답게 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라는 의미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나의 선친이신 박목월 시인이 쓴 ‘나그네’라는 시가 아직도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데, 그 시도 마찬가지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여러분들도 나하고 똑같이 모두 다 때려치우고 그냥 어딘가 훨훨 돌아다니고 싶지 않은가? 일이고 뭐고 다 귀찮아서 다 버리고 어디로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젊은 나그네처럼 떠나고 싶어도 차마 그렇지를 못한다. 내 어깨에 꽉 눌러 잡고 있는 내가 짊어진 숙명의 짐이 나그네라는 이상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과 만나보고, 내가 짊어진 짐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살펴보게 하는 것이 바로 시다. 그러면서 점점 사람 꼴이 되어 가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문화수용이라고 한다. 우리는 영화도 보고 비디오도 본다. 이것도 하나의 문화수용의 방법이다. 나도 우리 제자들하고 대화를 하려면 일주일에 비디오라도 한 편 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모양새를 갖추고 살아가는지를 알아야 아이들과 대화가 통한다. 그래서 가끔 비디오 가게에 들러 본다. 대개 한쪽 구석에는 성인영화가 많이 꽂혀 있다. 그런 음란영화를 보고 감동 받은 적이 있는가. 혹시 그 영화에 감동해서 밤새도록 울어본 사람이 있는가. 그런 것은 단지 흥미 위주로 꾸며져 있고, 사람의 몸을 자극하는 본능적인 내용일 뿐이다. 노래방도 마찬가지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가?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극장에 가서 좋은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핑 돌아서 눈물을 닦아본 기억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울리는가? 그 속에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진실한 삶과 변하지 않은 사랑, 사람답게 사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번쯤은 열망해왔던 인생을 보기 때문이며, 답답하고 안타까운 감정이 강하게 솟구쳐서 울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서 자기 스스로 사람꼴을 갖추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그런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즐거움이 있는가? 자신이 보다 나은 훌륭한 인간으로 발전해 가는 역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회사의 대리에서 과장되고 사장이 되면 직위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결혼을 한 다음에 나는 어떻게 변했는지 돌이켜보자. 재산을 늘려 가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바뀌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점점 높은 세계로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께서 작년 8월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간 나를 이끌어 온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지금도 속상하다. 그렇지만 내가 제일 속상할 때는 피곤할 때다. 내가 셋방에서 살 때 우리 어머니가 오셨었다. 우리 아이들이 일곱 살 때였다. 내가 저녁에 집에 갔더니 어머니가 와 계셨다.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니 아이들이 내 목에 매달렸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늦은 저녁을 먹는데, 우리 어머니가 아이들을 한쪽 구석에 모아 놓고 내가 듣지 못하도록 “이놈아. 너희 아버지는 그냥 길바닥에 다니는 아버지가 아니다. 하루 종일 너희들 때문에 고생하고 힘들게 지내다 온 아버지야. 이제는 아버지가 들어오거든 절대 ‘아버지 이제 와’ 그러지 마. ‘아버지 힘들었지, 고생하셨지’ 하고 인사하는 자식이 되도록 해. 따라 해봐”하시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내가 밥을 먹고 있다가 눈물이 흘러서 밥그릇에 들어가는 것이다. 지금도 내가 집에 가서 문을 열면 서른 살이 된 우리 아들이 “아버지, 고생하셨지요?” 하면 엄마 생각이 나서 현관에 주저앉고 싶다. 우리가 고생하고 힘든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가치이다. 이런 의미 부여의 방식을 통해서 삶의 보람을 가치로 변환시키는 힘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은 유산으로 남아야 한다. 나는 어떻게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후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돈을 주는 것만이 유산이 아니다. 이런 삶의 정신의 가치를 흘러 들어가게 만들어 주는 것도 유산이다. 우리 아버지는 시인이셨다. 그런데 다섯 형제의 등록금을 마련할 때쯤이면 수필을 쓰셨다고 한다. 그래서 수필집이 열세 권에 달한다. 내가 대학 3학년 때의 일이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한 겨울이었다. 아버지가 세수를 하시는데, 세숫물이 바닷물처럼 파랬다. 깜짝 놀라서 아버지 얼굴을 보니 입술이 퍼렇게 되어 있었다. 우리 집은 좁았다. 온돌방에는 우리들을 자게하고, 아버지께서는 글 쓰는 방이 없어서 마루에서 글을 쓰셨다. 난방도 되지 않고 영하 십 몇 도까지 내려가는 날씨에 거기서 글을 쓰다보니 잉크가 얼어버린 것이다. 밤새도록 입술로 녹여 가면서 글을 쓰신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시를 쓴 것이 아니라 우리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필집을 쓰느라고 고생을 하신 것이다. 철없는 나는 나 때문에 고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만 글쓰는 것은 힘든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유품들을 태울 때였다. 나는 양말 같은 것을 태우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장롱 속에서 두툼한 겨울 내복을 여섯 벌인가 들고 나오셔서 태우라고 하셨다. 나이 드신 어른이 입던 거라 성한 곳이 없었다. 여섯 벌이 전부 오른쪽 팔꿈치가 닳아 해져서 어머니가 헝겊을 오려서 팔꿈치를 전부 기워 놓은 것이었다. 나는 떨어진 팔꿈치 밑에서 자란 자식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한번도 짜증나 본 적이 없다. 나도 두 팔이 떨어진 아비가 되고 싶다. 우리 자식들에게 두 팔이 떨어진 아버지가 되고 딸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유산이다. 그래야 물질을 지배하는 능력이 생긴다. 이런 가치가 승계 되어 여러분의 몸 속에서 우러나는 것이 삶이다. 이것은 지적 삶의 체계이다. 여러분들은 정말로 사람들의 얼굴 뒤에 감추어진 속마음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매일 붙박이장처럼 그냥 보고 산다. 그런 것을 쓸 수 있는 것을 가리켜 정서적 언어라고 한다. 여기에 계시는 장성군민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아버지에게 이 세상을 살면서 가슴에 멍이 든 것이 없느냐고 한번이라도 물어보신 적이 있는가? 멍든다는 말은 정서적 언어다. 어머니께서 이 세상에 살면서 상처받은 적이 없느냐고 물어보면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준 적이 있는가? 그런 적이 없다면, 무슨 재주로 훌륭한 삶을 만들겠는가? 우리는 제일 가까운 사람들끼리 비로소 속에 든 사람을 서로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설명하면, ‘훌륭한 삶’이란 이런 가치와 정서와 창조의 정신을 통해 만들어진 기준을 토대로 그 다음에 자기가 그려보는 삶의 세계다. 우리는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간다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보다 나은 것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통해 마지막으로 자기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왜 직장생활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돈벌러 다녀” 또는 “목구멍이 포도청이야!” 식으로 대답하면 입에 풀칠하는 생존의 의미밖에 없다.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논리를 만들기 바란다. 나는 깨끗하게 살고 싶고, 정직하게 살고 싶어서 공무원이 되었다고 대답하기 바란다. 그러면 깨끗하고 정직한 공무원의 인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가치부여의 방식을 통해서 삶의 즐거움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지금도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버님 무덤 앞에 가서 자랑할 게 없다는 것이다. 바보 같은 나를 자식이라고 안아준 그 즐거움이 살아있는 이유가 아닌가. 여러분들도 나와 똑같을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바보이지만, 아버지 품에서 만큼은 제일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던 위대한 탄생의 순간을 나 스스로 키워가야 되겠다. 이게 우리가 훌륭한 삶을 만들어 가는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
출처 : http://www.happyyang.com/bbs/board.php?bo_table=board&wr_id=942&pag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