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 '비둘기집의 원리'라는 게 있다. 개집의 원리라고 해도 될텐데 그래도 비둘기가 느낌이 잴 산다. 가장 간단한 형태의 '비둘기집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n마리의 비둘기를 (n-1)개의 비둘기 집에 나눠 넣으면 2마리가 들어간 집이 적어도 하나는 생긴다.
다섯 마리 비둘기를 집 네 개에 나눠 넣으면 5-0-0-0이든 2-2-1-0이든 아니면 최대한 고루 배분하려고 1-1-1-2로 하든 두 마리 들어간 집이 생긴다는, 쉽고 당연한 원리다. 이 간단한 원리를 이용하면 예상외로 많은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한 변의 길이가 2cm인 정삼각형 내부에 점 다섯 개를 찍으면 두 점사이 거리가 1cm 미만인 두 점이 적어도 한 쌍은 생긴다는 걸 증명할 수도 있다. 한 변의 길이가 2cm인 정삼각형은 한 변의 길이가 1cm인 정삼각형 네 개로 나눌 수 있고, 이 네 칸에 점 다섯 개를 찍으면 적어도 한 칸에는 점 두 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 변의 길이가 1cm인 삼각형 내부의 두 점 사이 거리는 항상 1cm 미만이다. 다른 예로 서울에는 머리카락의 갯수가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대머리!라는 답은 넣어두고... 보통 사람의 머리카락이 15만 개인데 서울 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다. 방을 15만 개 만들어놓고 수백만의 서울 시민을 머리카락 수 별로 나눠 들어가게 하면 같은 방에 여럿이 들어간 방이 반드시 생긴다.
어제 문득 '나는 가수다'를 보다가 이 '비둘기집의 원리'가 탈락을 면하는 안정권 등수 계산에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현재 '나는 가수다'는 두 차례 경연의 합산점수가 가장 낮은 사람이 탈락한다. 이 때 1차 경연에서 받은 등수를 가지고 가수와 매니저들은 2차에서 몇 등을 해야 안정권인지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는데 모두 감에 의한 것이다. '이번에 3등했는데 다음에 4등 하면 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주는 것이 비둘기집의 원리이다.
먼저 최하위가 떨어지는 방식의 특성상 한 출연자가 1, 2차 경연에서 특정 출연자 한 사람만 반복해서 이기면 탈락은 면한다. 앞의 '1차 3등 2차 4등' 예제를 생각해보자. A 출연자가 1차에 3등을 했다는 것은 네 명의 출연자 B, C, D, E를 이겼다는 것을 뜻한다. 이 B, C, D, E 중 한 명이라도 2차 때 다시 이긴다면 A는 생존한다. 2차 때 4등을 했다는 것은 세 명을 이겼다는 말이다. 이제 2차에서 A에게 진 사람들을 위한 세 개의 방을 생각해보자. 여기에 1차에서 A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F, G와 A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던 B, C, D, E중 임의로 세 명을 골라 채워야한다. 그러면 방 셋을 F, G 둘로 채울 수는 없어 적어도 한 방에는 B, C, D, E 중 한 명이 들어가야 한다. 즉, B, C, D, E 중 한 명은 A에게 두 차례 모두 진 것이고 A는 탈락하지 않는다. 이 예제를 일반화시키면 다음과 같다.
1,2차 경연의 등수 합계가 7 이하이면 탈락하지 않는다.
1차에서 1등을 해서 모든 출연자를 이겼으면, 2차에서는 6등을 해서 한 명만 뒤에 놔도 최소한 2차에서 아랫 자리로 밀어낸 한 사람보다는 높은 총점이 보장된다. 1차에서 2등을 했으면 다음에 5등 이상을 하면 생존이 보장되고 그보다 낮은 등수면 탈락을 걱정해야한다. 물론 탈락 확정은 아니다. 두 차례 경연 중 한 번이라도 7등을 했으면 생존이 보장되는 등수는 없다. 실제로 BMK는 1차 1등, 2차 7등으로 탈락한 바 있다. 방송을 볼 때 응원하는 가수의 생존 보장 등수를 생각하며 보면 가슴을 졸일 일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ps. 조관우가 지난 방송서 4등하고 다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할 때, 1차 5등 2차 4등이면 작지만 떨어질 확률도 있는데 생각했다. 이러다 언제 감사하다고 하고 떨어지는 사람 나온다 ㅋㅋ. 물론 그 때 1차에서 조관우보다 뒤였던 옥주현이 아직 등수 발표 전이라 탈락 아닌 건 사실이었지만.
ps. 총 등수의 합이 클수록 불리하지만 꼭 총 등수 합이 최대인 사람이 탈락은 아니다. 한 번은 1%차이로 각 등수가 갈리고 한 번은 10% 차이로 갈릴 수도 있으니. 하지만 총 등수 합이 클수록 탈락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등수별 득표율 차가 일정하다는 가정 하에 총 등수의 합 별로 탈락 확률을 구해볼 수도 있겠지만 복잡할 것 같아 그만둔다. 이거 수능에 문제로 나오면 학생들 머리좀 아프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