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의 ‘릿지화’ 광고에 ‘고난이도 등반’이란 말이 보인다.
‘고난이도’는 무슨 뜻일까?
대부분은 ‘매우 어려움’을 뜻하는 말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이 말을 찬찬히 뜯어보면 참으로 모순덩어리다. ‘어렵고(難) 쉬운(易) 정도(度)가 높다(高)’는 뜻이니 말이다.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개념이 포함된 말을 한 가지 개념은 쏙 빼고 다른 한 가지 개념으로만 쓴 것이다. 즉 ‘易’는 빼고 ‘難’의 뜻만 살려 쓴 것이다. 이 ‘고난이도’란 말을 해마다 11월이면 어렵지 않게 듣고 볼 수 있기도 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면 ‘고난이도 문제’ 같은 표현을 입시 관계자들의 말과 글에서 수없이 접하게 된다. 그러니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이 말을 쓰는 듯하다.
‘어려운 정도’를 말하려면 ‘쉬운 정도’는 빼고 ‘난도’라고 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정도’임을 말하려면 이 ‘난도’에 ‘고’를 붙여 ‘고난도’라고 하면 되고. ‘난도가 높다’, ‘난도가 낮다’, ‘고난도의 기술’처럼 쓰는 것이다.
그럼 ‘난이도’는 어떤 때 쓸 수 있을까? 그야말로 ‘어렵고 쉬운 정도’를 뜻할 때만 써야 한다. ‘시험 문제의 난이도 조절’처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려운 정도’는 ‘난도’라고 하는데 ‘쉬운 정도’를 나타내는 말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이도(易度)’라고 하면 될까?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말은 우리말에 없다. ‘쉬운 정도’란 말도 ‘난도’란 말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난도가 낮다’란 말이 바로 ‘쉬운 정도’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따뜻하고 차가운 정도를 나타낼 때 ‘온도(溫度)’란 말을 쓰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온도가 높다’라는 표현으로 따뜻함의 정도를 나타내고, ‘온도가 낮다’라는 표현으로 차가움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가운 정도를 나타낸다고 ‘냉도(冷度)’란 말을 따로 만들어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고도(高度)’, ‘심도(深度)’ 같은 말도 모두 같다.
그러고 보면 ‘난이도’란 말이 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도’만으로도 충분히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온랭’, ‘고저’, ‘심천’이란 말은 있어도 ‘온랭도’, ‘고저도’, ‘심천도’ 같은 말이 없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난이도’는 다른 말들과는 달리 상반되는 두 개념이 합쳐져 하나의 말이 됨으로써 헷갈리게 만드는 셈이다. ‘온도 조절’, ‘고도 조절’이라고 하는 것처럼 ‘어려운 정도’를 조절하는 것도 ‘난도 조절’이라고 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미 많이 쓰이고 있으며 사전에도 올라 있는 말이니 쓰더라도 제대로 써야겠다. ‘고난이도’는 틀린 표현이란 사실만은 꼭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이 광고의 ‘릿지’란 표현도 짚어 봐야 한다.
‘릿지’는 영어 ‘ridge’인데 이는 ‘리지’로 써야 한다. ‘ridge’의 발음은 [rɪdƷ]이며 외래어 표기법의 ‘국제 음성 기호와 한글 대조표’를 보면 [dƷ]는 모음 앞에서는 ‘ㅈ’으로, 자음 앞 또는 어말에서는 ‘지’로 적도록 되어 있다. ‘ridge’를 발음할 때 [dƷ]가 된소리처럼 들려서 ‘릿지’라고 쓰는 듯한데 이는 표기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ridge’는 명사로는 산등성이라는 뜻이고, 동사로는 이랑을 만든다는 뜻인데 이 말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암벽 등반을 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아도 이런 뜻으로 쓰인 예는 찾을 수 없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콩글리시인 듯하다.
이와 함께 ‘토러버를 각지게 설계, 엣지 릿지 용이’란 말이 보인다. 이 문구의 ‘엣지’도 ‘리지’와 마찬가지 이유로 ‘에지’라고 써야 한다.
그런데 ‘토러버를 각지게 설계, 엣지 릿지 용이’란 말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기 어렵다. ‘토러버’는 ‘toe rubber’인 모양이니 ‘발가락 부분(발끝)의 고무’라는 말인가 보다. ‘엣지 릿지 용이’, 그러니까 ‘에지 리지 용이’란 말은 아마도 ‘모서리 진 암벽을 등반하기 쉬움’이란 얘기를 하려는 모양인데 말도 안 된다 싶어 더 할 말도 없다. 한글로 적었다고 영어가 우리말이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좀 알았으면 싶을 뿐이다.
‘크롤로계 부틸’, ‘그립력’ ‘라스트 토스프링’, ‘클라이밍존’, ‘릿지존’…… 등산 전문가들은 알아듣는지 모르겠으나 참으로 난해한 말들이다.
이 광고를 놓고 할 말이 더 있지만 띄어쓰기 두어 가지만 간단히 얘기하고 말겠다.
‘극대화 하여’는 ‘극대화하여’라고 붙여 써야 한다. ‘-하다’는 일부 명사에 붙어 동사로 만드는 접미사이기 때문이다.
‘밀착 시켜주는’도 ‘밀착시켜 주는’이라고 써야 한다. ‘-시키다’는 일부 명사에 붙어 사동의 뜻을 더하며 동사로 만드는 접미사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주다’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어떤 행동을 함’을 뜻하는 보조동사다. 보조동사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광고 문구의 ‘끝없는 진화’, 그걸 우리말 바르게 쓰기에서도 보여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