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헛발질만 하던 허준이 강력한 뒷 헛발질을 하며 끝났다.
1. 헛발질 하나 : 조선의 관리는 현직이나 휴직이 구분이 애매하기도 했지만
감히 벼슬을 내놓고 낙향했다 해도 6품 최말단 현감이 종1품 대감에게
비록 반질거리고 말을 안 들을 수는 있지만 하대하거나 반말을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기가찬다
2.극중 "예진"은 허준과 동년배 또는 많아아 다섯살 정도 차이 일 것이다
허준은 77세에 운명하였다
이 드라마 사람들은 나이가 다 개판이다.
예진이 몰래 좋은 보약만 먹었어도 그렇지 70노파의 얼굴은 아니지
영의정은 허준이 젊었을 때도 정승이라더니 아직도 살아 있고
허준은 아주 장수한 경우에 속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40이란 나이면 요즈음으로 치면 65세정도에 해당한다.
우수갯 소리로 이 나이면 경노당에서 신발정리하고 잔심부름하는 나이다
조선말기만 해도 40이 넘으면 노인이라고 앉았다 일어서려면 부액(겨드랑에 손을 넣어 부축)했다 한다
그래서 나이가 많다는 뜻으로 환갑진갑 지났다는 말도 있었지만
요즈음 환갑진갑은 커녕 70순도 별로 잔치하기 내켜하지 분위기다
3,극중 김만경은 붉은 관복입고도 청색 관복입는 인간들에게 하대 당하고 있다
의상을 드라이크리닝을 보내서 어절 수 없이 그렇게 입었으면
대사를 치지 말아야지.. ㅉㅉ 정3품관원 그중에서도 당상관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입고
허준 모친은 18에 허준을 낳았다 해도 95세다 뭘 좀 알고 드라마를 만들어야지
방부제 인간 투성이 드라마
언젠가 부터 수염이 엉성해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너무 가는것이 아닐까?
중후해보이지 않고 가벼워 보인다.
옛사람 수염을 다듬지 않았다.
박물관 초상화에서도 거의 수염에 목슴걸고 그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생 수염만을 다루는 분장사들은 장인이 되려면
이런 정도는 공부해서 반영해야 하지 않겠는가?
애만쓰고 문전만 어지럽히 꼴이 되고 말았다
배우들은 쉬지도 못하고 너무 고생이 많았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누구나 열심히 하니까
잘 해야하는 것이다
최근 허준을 보긴하지만 틀어놓고 딴 짓을 할 정도로 아무 내용도 끌어 당기는 힘은 없다
지난주부터 "참 골 때린다"싶어도 언급을 할 의욕조차 못 느끼는 부분
김만경 극중 그는 붉은 관복을 입었는데 즉 당상관이란 말이다 (통정대부)
유도지는 내의원정으로 정삼품 통훈대부 당하관이다
당상관이 당하관과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감히 아랫사람 다루듯하니 실로 웃긴다
전작에서는 일찍 죽은것으로 기억하는데 괜히 붉은 옷은 입혀서 사단을 만든다.
허준의 터무니없는 급진급은 극 진행으로 보고 그냥 넘어간다
전작이나 구임허준이나 극작가는 동일인 , 전작에서는 최대한 이은성의 결에 따라 대본을 쓰더니
거져 먹는것 같아서 일까? 애써 다르게 해보려는 과정에 헛점이 보인다
일일극으로 만들었으니
출연자들도 지칠대로 다 치쳤으리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다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끝이 보이니
애쓴 김에
조금 더 분발해 좋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예인으로서 영광이 아닌가 싶다
사실 요즈음 초한지에 젖어 있다
열심히 지도도 그리고
아주 수작이란 느낌이고 사전 제작한 것이니 군더더기도 없고
많은 초한지가 있지만
이번에 아주 훌륭하다
중국의 사극을 보면 챀 탄탄하고 빠른 극 전개가 몰입하게 만든다
이 수입드라마을 왜 더빙으로 만드는지
성우들이 반대하기는 하지만
영어 잘하겠다고 어린아이 혀까지 수술하는 광난의 교육 열풍속에 사는 나라에서
참으로 어울리지 않게
더빙을 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다.
성우 일자리 만들기 위해 우리가 드라마 더빙으로 보아야하는가?
국어사랑이란 이상한 말도 궁색하고 촌스럽다
자막만 있으면 되는 드라마를 비싼 성우들이 왜 더빙을 해서 코스트를 올리는지
다 같이 술취한 세상을 사는데 홀로 깨어 있으니 하고 울던 굴원이 생각난다
8월20일
허준 당시 임진왜란 발발시점 조정 인물 우리의 시각으로 유명인사
8월 19일 허준
양반중에 양반인 고관이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자.
기술관,의원등은 정3품 통훈대부(당하관) 이상 오르지 못한다
ㅁ "허준을 정3품 당상관에 가자한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하지만, 실은 어색하다.
당시 양예수는 종2품 가의대부(=가정대부)였다
유도지(가공인물) 정3품 통훈대부(당하관) 윗 표에 복식 색
"불의 여인 정이"도 허준과 마찬가지로 광해가 나온다
불의 여인 정이의 광해는 사옹원 부제조로 나오는데
8월 13일
내의원정 내의원이란 기관의 우두머리 정3품 유도지
내의원 참정 종4품 허준
정3품은 같은 정3품이라도 두 가지가 있다. 당상관과 당하관 (이하 내용 아래 글 참조 )
호칭 당상관부터 영감 붉은 관복을 입는다. 흉배에는 학 두 마리
내의원정 위로도 당상관급인 혹은 대감급인 어의가 10여명 있다.
17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 내의원 도제조 제조 부제조는 그 얼굴들이 같아 보인다
도승지가 제조가 되는 시간은 좀 걸릴 수 있지만 제조가 정승이 되는 것은 17년 세월이 좀 이해하기 힘들다
광해를 대감이라 부르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군마마 , 그 부인은 군부인마마다.
대권으로 용서하다.....
좀 어색하게 들렸다
이 단어는 요즈음 선거철에나 듣는 말이 아니던가?
보통 권도를 행하다, 혹은 권도로서..... 왕의 초법적 명령을 의미한다
극중에는 희언이 난무해도 궁중에는 희언이 없다
7월 24일 허준
역병에 관한 보고를 위해 왕을 만나는 장면에
"전하~ 도제조 대감들었사옵니다. "
어느 도제조 그냥 좌상이라 하던지, 내의원 도제조라 하던지, 약방도제조"라 불러야 맞다.
예를 들어 "전하 관찰사들었사옵니다" 라고 말하면 어느 관찰사 라 묻는게 당연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전하 대감들었사옵니다" 라고 말하면 어느 대감이냐 묻는게 당연하지 않는가
조정에는 많은 도제조와 수십여명의 제조대감이 있다.
혜민서도 제조가 둘, 장악원제조 ,관상감제조 , 사복시제조 ,도화서제조 , 전의감도 둘 ,훈련도감 둘, 어영제조 ,
사제제조,군기시제조, 종묘제조 하다못해 빙고도 제조가 있는데
무슨 제조 도제조를 내의원에만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론 대감들이 4-5개 제조를 겸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사옹원 조선시대 궁중의 음식을 맡아본 관청. 도제조(都提調) 1인, 제조 4인, 부제조 5인
선수도감. 가례도감등은 도제조 제조 부제조가 있다
7월 19일 종사관 품계
포도청 종사관(從事官, 종6품) 전의감 판관 종5품
포도청은 좌포도청이 한양의 동․남․중부와 경기좌도를, 우포도청이 한양서․북부와 경기우도를 관할하였다.
≪속대전≫에서는 좌·우포청에 각각 대장(大將, 종2품) 1인, 종사관(從事官, 종6품) 3인과 부장(部將) 4인, 무료부장(無料部將) 26인, 가설부장(架設部將) 12인, 서원(書員) 4인
내의원/전의감 /혜민서 는 다른 기관이다.
내의원 어의은 1명 인가?
의문점
1줄요약
1 |
| 혜민서 제조 관직은? |
![]() | 혜민서 뿐 아니라 모든 관청의 제조는 종1품-정2품이다. 겸직이며 관리 감독만 한다, 혜민서 제조 2인 제조= 대감 |
2 | ![]() | 혜민서 실무책임자는? |
| 주부: 종6품 > 다음이 의학교수: 종6품 > 직장:종7품 > 봉사:종 8품 (문과급제 보통 첫 직급 7품이다, 장원은 6품) |
3 |
| 수의의 품계는? |
![]() | 수의는 어의중 우두머리를 뜻한다. 수의란 벼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또"란 벼슬이 없는것과 같다, 정1품 ,종1품 어의도 있다 특히 드라마 배경시대인 현종때는 정2품 이상이 수의였다. 즉 수의영감이 아니라 수의대감 시대였다 |
4 | ![]() | 대감과 영감은 ? |
| 대감 정1품- 정2품 관헌 영감: 종2품- 정3품 (통정대부) 호칭 정3품은 2품계 1, 통정대부(붉은 관복) 2. 통훈대부(청색관복) |
5 |
| 당상관? |
![]() | 정1품 - 정3품(통훈대부 이상)/교의 / 붉은 관복 / 흉배: 2마리 학 문관, 무관2마리 호랑이 ..를 제외한 관헌 종9품까지 당하관 |
6 | ![]() | 참상관? |
| 정1품-종6품이다. 조의에 참가하는 자격이다, 참가 못하면 참하관 |
7 |
| 제조? |
![]() | 혜민서 ,내의원, 전의감 세 곳은 예조 소속이다, 하지만 혜민서 2명 ,내의원 3명 , 전의감 2명의 판서급의 관리자가 따로 있다 |
8 | ![]() | 내의원 ? |
| 도제조는 영의정(간혹 좌우의정), 제조:판서급, 부제조:도승지 나머지는 의관(어의), 마의 배경시대 수의는 정2품 이상이었다 |
9 |
| 태감? |
![]() | 태감은 내시=환관=내관 모두 동의어다, 벼슬은 낮지만 파워 집단이라, 언제나 경계 대상, 실제 많은 왕조 멸망으로 인도한 무리 |
10 | ![]() | 상선 ? |
| 내관 종2품 2명이다. 내관을 두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궁의 모든 여인을 왕이외 남자로 부터 격리하려 함이다. 상궁은 정5품 |
11 |
| 혜민서 서열 /인원 |
![]() | 주부1명 종6>의학교수1명 종6>직장1명 종7>봉사1명 종8> 의학훈도 1명 정9 >참봉 종9>기타 이속 의녀 31명 |
12 | ![]() | 혜민서 의녀 |
| 지방관아 노비중에서 뽑아 올린다. 연산군 때 의기라 하여 기녀(妓女)로 전락했는데, 의기의 관행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음 |
13 |
| 부태수 |
![]() | 태수 중국고대 지방관 당나라 때 없어졌음, 청나라 지방관 2-3개 성을 관할하는 총독, 1개성 순무, 그 아래 지부, 지현이 있음 |
12 | ![]() | 상선과 같은 계급(종2품) |
| 관찰사(감사), 참판 , 포도대장, 대사헌, 병마절도사, 수군통제사 |
13 | ![]() | 당상관이 뭐임 |
| 조선관료 사회에서 가장 극명하게 갈라지는 구분점, 정3품부터 이렇게 나누면 좋은데 정3품을 둘로 나눠 통정대부 통훈대부 라하는데 통정대부는 당상관, 통훈대부는 당하관이다.통정대부가 장군이라면 통훈대부는 대령인것이다. 당상관은 영감이지만 ,당하관은 "나으리" 옷 색도 다르고, 같은 정3품에도 이토록 차이가 크다
당상관이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왕의 특지(特旨)가 있으면 의관, 역관.기술관이 당상관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문·무반 관직 중에서 오직 정3품의 당하관직인 승문원정(承文院正)·봉상시정(奉常寺正)·통례원좌우통례(通禮院左右通禮)·훈련원정(訓鍊院正)의 네 자리를 거친 자라야만 당상관이 될 수 있었다. |
대감 어의 시대, 청와대에서 일하는 상당 인원이 근무지는 청와대지만 본연의 소속기관이 따로 있는 것 처럼 어의가 3품 이상 진급하면 소속기관과 직책은 지사 ,호군 , 목사, 군수 등이었다. 근무지는 내의원이지만 (하지만 품계는 높았다) (호군은 무관의 벼슬이다)(조선시대 흔히 등장하는 방법인데 대기발령, 또는 당장 직책은 없지만 급료 문제로 ) 관찰사가 종2품인데 종1품 어의가 부사(지금 시장급)로 나가려는데 신하들이 반대하는 대목에 승정원 일기에 있다. 아무리 장사 잘 해도 PX담당으로 뼈 굵은 자를 최전방 사단장으로 보낼 수는 없다는 논리다, 별4개나 달았는데 사단장은 안된다, 여단장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냥 국방부 후미진 곳에 책상이나 하나 주라는 것 , 출신이 낮아서 일꺼라고? 그러지도 않다, 당시 수의 위치에 있던 의관은 전형적인 문관의 코스를 가는 현령, 군수등 목민관이었는데, 의술에 조예가 있다 보니 자꾸 불려다니고 근무지가 너무 멀어 급할 땐 빨리 못오니, 가까운데로 근무지를 옮기고, 다들 그 의관만 원하니 어쩔 수 없이 어의로 주져 앉았다, 계속 벼슬이 올라 영의정과 같은 정1품까지 올랐으며 임금이 3번 바뀌도록 어의였다. 말로만 신의주 유배를 명하고 안 가고 계속 근무하다, 고양군으로 유배지를 바꾸고 그것도 가는둥 마는둥 하다 복귀한다, 당시 귀양보내라고 악쓰던 아~ 진정 실력이 있으면 귀양조차 안 가는구나
이 문제는 이렇게 이해하면 좀 쉽다. 요즘 대기업 총수 전용기사는 상무, 전무 사장급이다. 하지만 계열사 사장으로 내 보낼 수 있는가? 아무리 높아도 그것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
의관이 딱히 지금처럼 의사면허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간혹 의술에 조예가 있는 인물은 내의원에 의원노릇을 하는 경우가 있다 위에 언급한 유후성이란 현령이 의술에 고명하여 완전히 의원이 되어버린 케이스고 - 적성에 안 맞는다 , 난 정말 하기 싫다(몸이 늙고 아프다), 빠져 나간 이도 있다. 조선 시가 문학의 양대 산맥 송강 송강과 이름을 나란히 한 어부사시사의 고산 윤선도가 그렇다 보길도에 그 자취를 남긴 아름다운 시심과 한국적 정원의 정수를 보면 참 다재다능한 분인데 이분이 의술에도 조예가 깊어 억지로 내의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또 이분이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노래로 표현하는 부드럽고 섬세한 시심과 유괘한 가락과 달리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지독한 고집과 불의로 그냥 넘기지 못하는 성격에 거의 일생을 유배로 일관한다. 송시열 같은 대전사와 맞붙어 힘겹게 투쟁하다 , 늘 유배를 떠냐야 했다.
이번에 유후성이란 인물을 조사하다 ,고산 윤선도 선생 역시 잠시 내의원에 머물며 이런 저런 처방을 승정원일기에 흔적을 남기셨기에 이를 전합니다.
조선왕조에서 품계와 직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있다. 어의는 거의 일치 하지 않으니 예외로 하고 ( 의원은 정2품에 군수 나가기도 어렵다 ) 도승지가 원칙적으로는 정3품 통정대부 당상관인데 가끔 종2품인데도 도승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왜 어의는 이토록 일반 관료와 다른 대접일까? 어의란 직책이 너무 포상이 잦다보니 이런게 아닐까 한다. 큰 병 잘 수발하고 나면 전원 포상인데 이때마다 호봉을 계속 올려주다보니 직급이 미쳐 따를지 못하고 차이를 보이는게 아닐까 한다. 왕 입장에서는 감사하고 싶고 포상하고 싶지만 의원을 그만두게 하려는 것은 아니라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여겨진다
지휘관을 (소대장,중대장,대대장,연대장을)거치지 않은 사람을 장군이 되었다고 연대장 , 여단장으로 보내려니 나타난 현상 |
-그래 알아보라고 한 일은 어찌되었는가?-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진영아가씨가 관비였던 때라면 벌써 십수 년 전 일이 아닙니까. -- .. .. 자넨 그런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는가? 에이! "강군관"이 없으니 마음 놓고 일을 시킬 사람이 없군
한다고 하긴 했는데 "혜민서 제조까지 지낸 의관에게 그런 일을 시키시니"
| "혜민서 제조는 판서급"입니다 "마의"작가는 혜민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혜민서 제조니 저 앞에 있는 사람이 제조라 여긴 모양입니다. 혜민서 우두머리는 종육품입니다. 그 앞에 앉은 "수의"가 정3품( 최소 정3품 이상)
제조란 종1품-정2품 벼슬아치가 겸임하는 관직으로 관리 감독 정도의 소임으로 육부와 특별기능이 있는 아문(사헌부,사간원등)을 제외한 모든 기관이 제조가 있습니다. | |
내의원 도제조 는 의정입니다. (보통은 영의정) 제조 육판중 1인 (보통은 예조판서) 부제조 도승지
맨 아래 제조 관련 글을 참고하세요
제조상궁이란 말은 있지만"상궁"이란 칭호가 붙었잖아요 제조상궁 정5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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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선영감 예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제조영감 전하의 어명이십니다"
제조라는 단어는 영감과 병존하지 않는다. 제조 = 대감 | 푸~하하하 상선 ="영감" 맞습니다. 종2품입니다. (=관찰사,부윤,참판,병마절도사) 영감은 정3품중에서도 당상관과 종2품에게 부르는 호칭 대감은 정2품이상에게 호칭입니다.
혜민서 우두머리 종6품 주부입니다. (참상관중 최말단) 지금으로 치면 사무관입니다. 제조는 대감인 (종1품-정2품) 맞고요 당상관 > 당하관 > 당상관 정1품- 정3품(통정대부) 당하관 정3품(통훈대부)-종6품 참상관 정1품-종6품 참하관 정7품-종9품
제조는 대감급만이 할 수 있는 직책입니다. 종1-정2 우찬성, 좌찬성 ,판서가 겸직합니다 (전직 포함) *요즘 말로하면 ㅁㅁ본부장 ㅇㅇ대책위원장 | |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분명 시료가 무사히 끝났다고 하지 않았는가? 제조
알아보겠습니다. 전하! | ||
의학교수가 말을 듣지 않자
-오냐! 네가 다른 줄을 타겠다 이거지- -어디 믿는 구석이 있는가 봅니다, 제조 영감- -전 수의녀- |
| 벼슬시작한지 몇 년만에 종3품 "집의"라! 장원급제자는 첫 관직이 6품으로 출발하기는 하지만 과거급제해서 평생 4품 5품에 그치는게 일반적입니다. 고스톱 해서 따는 벼슬인지 대사헌 다음이 집의입니다. 사헌부가 현대의 검찰과 감사원의 성격이 있는 기관이라서
| ||
-->이분 왕이 그렇게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데 현종원년 정3품 당상관 승지 현종2년->도승지 현종10년 도승지 백광현 살던 시대 10년 가까이 내의원 부제조입니다 과거급제해서 정5품 오르는데 7-8년 걸렸고 학문은 옥당이었으니 두 말이 필요하지 않고4 정3품 당상관 ㅡ>정2품 판서까지 12년 당상관은 문신중시에 장원 | 남용익(南龍翼)이란 분이 있습니다. 본관은 의령 인조26년(1648)문과급제, 假注書(가주서) 5정7품으로 관직에 나아가서 효종1년 說書(설서)정7품6 ->주서7 효종2년8->효종2년 7월감찰9 8월->병조좌랑10 9월->정언11 ,11월에 정언 특진이 옳지 않다 상소가 많아 다음해 1월 병부좌랑, 2월 경상어사,효종3년 3월 정언 9월4일->사서12 9월28일->정언, 11월24일 ->지평13 효종4년1월-> 경상도사, 12월->예조정랑, 효종5년 ->校理14, 효종5년->수찬15 효종7년->종사관16 효종7년-> 修撰 ->부교리->兵曹正郞, ->형조참의,문신중시에 장원, 당상관으로 진급하여 효종8년->楊州牧使 현종1년->右承旨 현종2년->도승지(내의원 부제조),4년-> 대사간,8년 예조참판, 5년->경기감사, 8년->경상감사,현종9년 공조참판->대사간 ->도승지,10년 => 예조참판->대사간->도승지(내의원 부제조)17,현종11년-> 경기감사,현종12년->대사간->호조참판>형조참판->형조판서 |
인조 16년 姜碩期(강석기) 라는 분이 예조판서였습니다. 몸이 불편해서 사직하고 싶다고 상소를 올리니 인조는 좀 한가한 자리로 옮겨주고 며칠 후 혜민서 제조에 제수합니다.(겸직) 예조판서로 복귀->인조 18년 우의정 |
홍중보 | |
오정일 (吳挺一) 원년 도승지 (내의원부제조)ㅡ>개성유수, 현종3년 ㅡ>현종4년ㅡ>동지의금부사ㅡ>도승지(내의원부제조)ㅡ>동지의금부사 ㅡ>판윤ㅡ>현종7년 혜민서 제조ㅡ>형조판서 ㅡ> 현종11년 호조판서 (-->종묘제조,관상감제조,혜민서제조)ㅡ>行副護軍 18 |
제조가 맞다면 "대감"이라 불러야 지요 당상관만이 "영감" 소리를 들을 수있습니다. 대감은 정1품 종1품 정2품까지입니다 여기 열거한 분들 백광현 시대에 내의원, 혜민관 제조였던 분들입니다 혜민서 제조가 2인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 수의 또는 두번째 높은 어의는 정2품 이상이었습니다. 이들이 최고위에 올랐을 때 현종 3년쯤 정1품, 종1품이었습니다. 조선 최고의 쌈짱 송시열 우참찬이였고 (정2품) 다만 송시열은 이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의관 봉작이 과하다고 늘 상소가 있었고 다른 상소 내용 써 내려가다. 말미엔 꼭 거론 할 정도 |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는 직책을 보면 같은 정3품인데 당하관이 왜 그리도 차이가 많은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상관 정3품 도승지.( 모든 승지), 대사간, 수군절도사, 목사(요즈음으로 말하면 광역시장) 육조의 참의
금군장, 겸사복장, 부제학 대강 이런 급입니다.
(모두 그 위에 제조가 따로 있지만)
정3품이 우두머리인 기관은 성균관.사간원 ,전의감,내의원,장악원 훈련원, 사복시 상의원 군기시 사섬시 군자감 관상감 전의감 사역원
선공감 사도시·사재감 제용감 내자시 사섬시 예빈시 등이며 그 우두머리는 정3품 통훈대부입니다.(예외 있음 대사간은 통정대부 당상관)
바로 당하관이지요 정3품 당상관은 통정대부라고 합니다.
극중에서 대강 부서장을 붉은 옷을 입히는게 차별화도 되고
폼이나니까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어요,
통정대부 이상만 붉은 옷에 학이 2마리 그려진 흉배를 합니다. 무관은 호랑이 당상관 정3품을
통정대부라 부르는 문관과는 달리 절충장군이라 합니다
정리 : 정3품은 두 계급있다.
통정대부 당상관
통훈대부 당하관 손쉽게
지금의 대령과 장군의 차이처럼 너무나 확연하다 (대령이나 ☆보다는 높은 벼슬이다)
복장부터가 다르다.
통훈대부: 기술관이나 서얼 출신의 관리는 이 이상 진급할 수 없었다
당상관이 되지 못한다, 영감이라 부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어의는 개별적으로 왕실과 근접하는 경우가 많아 진급도 잘했고, 잘못되면 귀양도 잘 가는 그런 자리입니다.
당상관이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왕의 특지(特旨)가 있으면 의관, 역관.기술관이 당상관이 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문·무반 관직 중에서 오직 정3품의 당하관직인 승문원정(承文院正)·봉상시정(奉常寺正)·통례원좌우통례(通禮院左右通禮)·훈련원정(訓鍊院正)의 네 자리를 거친 자라야만 당상관이 될 수 있었다. |
삼의사는 서로 다른 기관입니다. 전의감 전의감정 정3품 그 위에 제조 내의원 내의원정 정3품 그 위에 제조 "수의"란 내의원 의관중 우두머리를 말합니다 수석어의 당상관이 되면 모든게 달라진다는 "별"다는 것과 같아서 현종 때는 어의중 당상관이 너무 많아 잔 일 할 의관이 부족하다는 상소가 있습니다. (어의 열명 중 7인이 당상관) 혜민서 주부 종6품 그 위에 제조 위 3부서는 예조에 속합니다. 그런데 따로 예조판서와 동급인 제조를 2명 두어 권력을 쏠림을 조절합니다. (해당 제조조차 전횡 못하게 2명을 두는데) 그런데 내의원 수의가 ? 마치 삼의사의 수장인듯 하는것은 좀 웃깁니다 대통령 주치의가 국립병원장 서울대학 병원장을 식품안정청을 마음대로 할 수 있나요 세 의료기관을 삼의사라고 부르는 것 뿐인텐데
A사 사장이 E사 사장을 또는 직급이 좀 낮은 연구소 부장팀장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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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의원은 도제조 제조 부제조 3인이 있다 도제조는 정1품 정승 반열(영의정,좌의정,우의정) 제조 2품 이상이며 부제조는 도승지 겸임
≪경국대전≫에 도제조는 정1품, 제조는 2품 이상이며, 부제조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즉 정3품 당상(堂上)의 관원을 일컫게 되었다. |
전의감 제조 2인 혜민서 제조 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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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즉위년/ 10월/17일(정미) 승정원일기 許積 등과 御醫 등에게 물품의 하사 및 加資의 명을 내리는 비망기 提調前知中樞府事南龍翼, 제조 전지중추부사 남용익 副提調前都承旨李元禎, 부제조 전도승지 이원정,
| 활인서 (마의에서는 유령 관청?) 조선시대 종육품아문(從六品衙門) 으로 도성(都城) 내의 병인(病人)을 구료(救療)하는 일을 맡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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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의사 [ 三醫司 ]
원래 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제생원(濟生院)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제생원이 혜민국에 합속된 후, 내의원(內醫院)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를 지칭하는 것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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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조와 부제조 필요에 따라 둔다 , 제조가 겸임이기 때문에
모든 관아가 이런 구조다. 육조 사헌부 사간원 제외하고. 모든 관아를 다 표시하면 다시 복잡해지니 관심부서만 표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저분하게 더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제조 2원 | 제조 2 | 도제조1, 제조1, 부제조1 | 제조 2원 | 제조1 | 제조 | |
| 전의감(典醫監) | 장악원(掌樂院) | 내의원(內醫院) | 혜민서(惠民署) | 도화서(圖畵署) | 빙고(氷庫) |
수장 | 정3품 | 정3품 | 정3품 | 종육품 | 종육품 | 종육품 |
그룹 총수 운전기사는 상무 전무급이라서 퇴근할 때 자기 차 기사 따로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통령 기사는 전에는 총경급이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네요. 총경= 경찰서장
당연히 퇴근 때 자기 기사 따로 있지요. 이무리 그래도 기사는 기사일뿐 이라고 아래를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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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청나라 관제는 조선과 같은 9품제 환관 최고위= 조선 상선에 해당하는 내관 총관태감 4품 부총관태감 6품 수령태감 8품 태감 무품계 청은 명의 멸망 중요 원인이 환관이라고 규정, 품계를 주지 않았으나 강희 말년에 태감의 수가 3000에 이르자 최고위를 5품 최하를 8품으로 했다 건륭에 이르러 4품-9품으로 하고 영원불변이라고 못 박았다. (이후라도 총애하는 내관에게 벼슬을 올려주고 싶은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그러나 慈禧太后때 (이연영) 단 한 명이 예외를 깨고 2품에 올랐으며 청역사상 최고위를 기록 | 태감은 내시의 다른 이름이다 (태감=내시=환관) 내시가 어찌 수염이 있겠는가? 이건 무지나 무식이 아니라 무심이다. "마의"감독은 무심의 극치를 이룬다 자막이나 넣지 말던지 태감=청의 고위관리 사신 무슨 고위급관리 혹 대감보다 위가 태감이라고 지레 짐작? 태감은 고위 관리도 사신도 아니다 사신으로 온 사람이 태감일뿐 이들은 지위는 낮지만 권세는 있는 무리다, "공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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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암도인을 따라 영파에 도착한 일행은 만두를 잔뜩 흡입한 후에 사암을 따라 청나라 관아에 아는 사람을 찾아 가는 대목
| 부태수? 고대에나 있던 벼슬이다. 당나라 때 없어졌다. 자막으로 유식을 자랑하지 않았으면 거론거리도 안된다. 청나라 말단 지방관청장은 현은 지현 다음이 부: 지부 성의 담당하는 순무, 2-3개 성을 관할하는 총독이 있었다 "영파"라고 하니 지부가 우두머리이겠다.
저 누런 옷입으면 죽는다. 황제만 입을 수 있는 색이다. 지부는 4품이다 조선과 비슷하다 부사 지현은 현감 종6품 암행어사 마패 내밀면 말 빌려주는 역참의 장도 종6품 혜민서 주부(우두머리) 종6품이다 조승우는 종7품 의학교수 종6품 | |
공주를 따라다니는 군관
| 그는 내시인가? 내시를 궁에 두는 이유는 단 하나 궁에 왕만 바라보는 여자들만 있는지라
사내구실하는 것은 자식이라도 궁에 둘 수 없다.
동궁만이 예외이며 다른 왕자는 사춘기 전에 다 내보낸다 | |
청에서 온 사신단을 환영하는 자리 청 사신이 조선의 의료단에게 감사를 하며 더 감사해야 할 이가 있어 소개하겠다며 백광현을 소개하는 대목 |
죄인 주제에 임금을 만나는 것 자체가 파격인데 동네 어르신 길에서 만나면 하는 인사를.... 다 격식 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절은 해야지 23 | |
역대 배우중 대비역을 제일 품위없게 연기한다 상궁은 어울리는데 | "주상께 고하여라" "전하 ~ 대비마마 입시입니다" 헉 신하에게만 쓰는 말이다. (알현을 대기,모시다 는 말이다) 대비면 어머니 아닌가 "대비마마 납시오" |
추워서 대사도 어색하게 발음할 만큼 고생하고 있고 보이지 않는 스텝의 노고를 잘 안다.
그리고 수 많은 단역들 유독 추운 날씨에 ,거듭되는 야간 촬영에 고생하는 것 잘 알지만
고맙게 편히 잘 보고 있지만
뱀을 그렸으면 멈춰야 한다.
더 잘 해보겠다고 발까지 그리지 말라는 말이다.
사암도인 같은 일반인을 잘 알지 못하는 인물을 극중에 등장시킨 아이디어 높이 평가한다.
(이해부족으로 오행보사법을 이상하게 만든 것도 이해한다. 일생을 명리를 떠나 오직 구도의 길을 걸어 역사너머 사라지신 분을 희화하는것은 좀 마음에 안든다)
역대 드라마중 제일 엉터리 중국어를 구사했다. 차라리 한국말로 하는게 낫지 않았을까
중국말 모르는 내가 들어도 "이수근"이 훨 유창하다. 어차피 못 알아 듣는다 치면 자신감이라도 있어야지
청나라 황비를 고치러 갔다는데 딴데 갔다 온거 아닌가?
당시 중국은 역사상 최고의 군주라는 강희 때였고
강희는 8살에 즉위하여 할머니가 꽉 잡고 있던 때라
오배같은 거물들에 치여 색니와 전략적 제휴 결혼을 했는데24 (11세초혼 14세 친정=오배제거)25
이게 가능했을까
아무렇게나 둘러붙인 시대인데 (하필이면 소년황제 시대에)
시청자만 똑똑한가" 현종 승하하는 해 33세 강희는 23세었다
기타 아문 |
마의 이후 백광현의 삶 |
어쨌든 끝났다.
하지만 마의 실존인물인 백광현은 오래도록 어의를 하며
숙종10년에 아들 백흥령 금위영 군의로 취직
숙종 10년 포천현령 59세 사헌부 줄기차게 반대상소, 왕 끈질기게 무시
숙종15년 忠壯衛將 [ 충장위장 ] (의관은 정3품이상 오르면 내의원정 이상 직책이 없는 관계로 전혀 다른 벼슬을 받는다)
조선(朝鮮) 시대(時代) 때의 정3품(正三品)의 무관(武官)
숙종 19년에 지충추부사 제수
조선시대 고위 의관은 참으로 모순된 위치이다
계급장 | 소속 봉급수령처 | 직위 | 근무처 | 임무 | |||
종 1품 숭록대부 | 중추부 | 지중추부사 | 내의원 | 의관 |
보통 중추부사 종2품직이다. 일없이 봉복받는 자리
숙종 35년 백광현의 제자가 종기를 잘 치료하는 자라 하여 특채
경종 3년 백광현 아들 백흥령 종기의 명의로 소문자자하여 내의원에서 계를 올려 관복을 입혀 함께 진찰하기를 청함
영조 50년 ...어의 白文昌는 백광현의 후손으로 신묘한 침술.....
헌종 9년---鍼醫 白成五 ...백광현 자손중 1인....
이렇게 백광현의 후손은 당대 최고의 침의로서 계속 이어진다.
요약
1, 마의 ->어의 백광현은 존재했다.
2. 종1품 중 상위인 숭록대부가 되었다.
3. 실직은 현감이 끝이다 (별 3개 짜리 대대장)
4.작가는 소재는 좋으나 ,무성의로 글 써 나를 웃겼다.
(침대는 과학이라 할까 두렵다)
5. 첩지는 여자가 벼슬을 받거나 승급하는 것을 말한다.
6. 제조가 무엇인지 조금만 더 공부해라. "마의"혜민서 제조는 종6품으로 의관이다, 다시 태어나도 제조가 되지 못한다.
(아무리 벼슬이 올라도 군수나 현감하기도 어렵다. 제조는 판서급 중신이다,)
7.태감은 수염이 나면 궁에서 쫓겨난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뒤살아난다"고 한다. 즉 불확실한 거세)
마의 언급 관직의 포스팅을 마침니다. 감사합니다.
종1품중 상위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한 표
승정원 일기에 말년에도 백광현 앞에 다른사람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더 품계가 높은 의관이 있은 듯 하다
마의" 한 편할 때마다, 계속 보충하다 보니, 방만해서 핵심만 따로 정리했습니다.
마의 마지막회
어의가 뭔데 전의감을 마음대로? (어의란 10명정도 있는 의관중 하나 일 뿐이다, 오히려 내의원정 이것은 권력이다. 내의원 책임자 이니
전의감은 전혀 다른기관이고, 혜민서 역시 다른 기관이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천지분간을 못한다.
작가 말 처럼 작은 허물도 결코 그냥 넘기지 않는 관료 시스템에서 1대대장이 선임대대장이라고 타 연대 1중대장 사무실을 맘대로 뒤집나?
3월 19일 방영분
백광현이 임금 몸에 손을 댈 수 있었다면
그때 이미 어의인 것이다.
어의란 임금을 치료하는 의관을 말한다
어의는 딱히 정원은 없지만
보통 10명 정도이며 내의원의 팀장은 내의원정으로 정 3품이다.
그러나 꼭 당상관은 아니다
하지만 내의원에는 일은 하지만 소속은 다른 곳으로 되어 있는 의관이 많다
마의 배경시대인 현종 때를 기준으로
당상관 의관이 최대 7인까지 있은 때가 있어
내의원에서 당상관 아닌 의관이 필요하다고 호소를 한다
궁내 급한 환자가 있으면 숙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왕, 대비 ,중전 같은 슈퍼급이 아니면 당상관이 감기 수발 한다고 연일 밤을 세우기 어렵기에
이런 호소가 있었나 보다.
이즈음 수의는 정1품 넘버2는 종1품이었다.
백광현
아무리 공이 커도 정3품이면 충분한데 ,당상관까지....... 작가는 모르는가 , 이 시기가 조선 최고의 쌈짱 송시열이 있던 시대라는 것을
주부에서 당상관이라
이런 승진 인사는 연산군 급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정5품 정랑 조선 관료의 꽃이라는 자리다.
급은 높지 않지만 실무자였기에 이조정랑 호조정랑 자리는 당파싸움에 진원지였다
누가 정랑을 차지하느냐에 따라 파벌이 죽고 살 만큼 막중한 자리였다.
이런 정랑을 지낸 사람도 중신과거에 합격해서야 당상관에 오른다. (중신만 보는 시험)
종6품에서 정3품 그것도 당상관이라 6품에서 3품으로 진급시켜도
(아래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언급하면
남용익이란 분이 있었다.
어쩌면 현종 시대에 내의원과 가장 밀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의원 부제조를 10여년 지냈고 잠시 뒤 내의원제조가 되는 분이다
내의원 부제조는 도승지 당연직이다. 제조는 판서급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하고 도제조의 영의정급
이 분이
과거급제해서 정7품에서 정5품 오르는데 7-8년 걸렸고
정3품 당상관 ㅡ>정2품 판서까지 12년
당상관은 문신중시에 장원해서 올랐다
정6품 때 병조좌랑에서 -->정언으로 임명된다
9월->정언 , 정언 특진이 옳지 않다 상소가 많아
왕이 결국은 다음해 1월 병부좌랑, 2월 경상어사, 3월 정언
이렇게 편법을 쓸 정도로 승진을 마음대로 못 시킨다
궁금했다. 정언이 얼마나 높은 직급이기에 이토록 반대를 하는지
정언은 병조좌랑과 같은 정6품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이 분이 학식과 문장이 대단했다.
과거급제 후 중신공시 장원을 하여 당상관에 오르고
임금에게 경서를 강의하는 일을 했다.
중식들에게 가끔 쪽지 시험처럼 경연을 하곤 했는데
늘 이 분이 장원을 했다. 한 번은 2등을 했기에
궁굼해서 찾아보니
아~ 이런 분이 계셔서
송강 정철선생이 장원에 이름을 남기셨다
그냥 송강이 아니구나
)
아마 조선이 발칵 뒤집어 졌을 일이다.
대리에서 이사로 진급한 것 비슷하려나
구청 계장에서 중앙부처 청장으로 승진한것 같으려나
국밥집 아들은 참봉에서(종9품) 종6품 의학교수로,,,, 상병이 간첩잡았다고 상사로 진급시키는 것과 같다
작가님이 어제 관찰사에게 좌의정을 시킨 것이 미안했는지
오늘은 팍~ 인심을 썼다.
요즈음 포스팅은 너무 작가를 갈구는 것만 같아 좀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그래도 말할 것은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개구라라 푸는데 가만있으면
다 진실이 되어버릴 텐데....
모르는 사람들은 작가가 설마....하지만
이 분 참 무식하다, 조선의 반상제도와 신분제도를 인도의 카스트 제도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오늘은 백광현이 첩지를 받았다.
백광현은 언제 거세를 하였나
첩지는 내외명부 쪽 머리의 가르마에 얹어 치장하던 장신구를 말하는데 이것으로 신분을 나타내어
첩지를 내린다고 하는 것이다.(여자에게만 첩지라는 말을 사용한다)
벼슬을 올려주는 것은 "가자"라 한다. [加資]
백광현이 시술 중에 "양명경상에 시침을 하겠습니다"
이때 자막이 뜬다 양명경(亮明經)소화기관
참 너무한다.
모르면 그냥 대사로 처리하고 넘기면 될 일이다
x도 모르는 쥐 이야기를 모르는가?
"느들 이런 말 모르지" 하고 알려주는 게 자막아니냐
족양명위경이 정식명칭이다. 양명경이라 쓰고 싶으면 한글로 써라
陽明이라 써야 한다
요즘 애들은 한자를 너무 몰라
하면서 웃기는 영감탱이들이 엉터리 한자를 쓰는 꼴을 많이 봐서 그런지
이런 것 보면 열이 난다.
아는 게 뭘까
구라치는 것 말고 별로 공부도 하지 않는다.
하긴 그러니 세경과 쇠경을 구분 못하고
태감이 내시라는 것도 모르고 수염달고 나오지
"동이" 때도 태감이 수염이 있더니
오늘은 현대의학에서도 백 년도 안된 스킬을 구사한다.
현종이 33세에 죽은 것은 백광현이 감염시켜 죽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오늘 수술 후유증으로 죽었을 것 같다.
얼굴이 화끈거려 혼자 괜스레 부끄러웠다.
제왕절개술이란 줄리엣 시저가 이렇게 태어났다 해서 불리는 이름이다.
개복수술은 2000년도 넘었다는 말일 테지만 별 근거가 없는 말이다
지금 이 작가는 삼국지연의의 조조머리 수술하려는 화타 대목을 벤치마킹하는 모양이다.
대비가 백광현의 손을 덥석 잡는 대목
분량 뽑으려는 심산인 모양이지만
남녀가 유별하며 명주실로 진맥했다는 뻥이 있을 정도로
(※명주실을 손목에 대고 발너머 또는 방 밖에서 의관은 그 실가닥으로 진맥을 했다고 전해진다.
여인에 살에 비단수건을 덮고 그것을 진맥했으리라,
그것도 너무 외간 남자와 가까이 간접 접촉을 했다고 여겨
이런 명주실 뻥을 만들었을 정도이던 분위기,
발너머에서 진맥했다는 것도 외간 남자와 한 방에 있다는 점이 걸려 ,
방 밖으로 상황을 변경해야 마음이 놓이는 그런 시대다
진맥으로 뭘 안다는것 자체가 신비로운 일인데 빠르고 느리다 약하다 강하다 이상 뭐가 있겠는가
명주실로 문 밖에서.......
"왕숙하 맥경을 삼년 공부해도 모두 다 팔딱 팔딱 뛰더라 " "부침지삭")
외간 남자와 얼굴 보는 것도 어려운 시대였다.
발을 치고 앉아 중신들을 마주하는 수렴청정이 괜히 있는 줄 아는가
하물며 스킨 쉽을... 현대인들이 보는 관점으로 보면 키스를 보는 듯한 정도로 보면 된다
대비가 배광현에게 키스를 . .. 이거 우리가 지금 관념으로 봐도 웃기는 것 아닌가
언젠가부터 사극에서는 장옷이 사라졌다.
여인이 밖을 출입할 때 치마같이 뒤집어 쓰는 그 옷
아랍의 히잡, 차도르 처럼 외간 남자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이슬람의 율법이 지금도 머리칼을 보이지 않게 다녀야 한다.
중동의 이런 풍습은 지금의 수녀님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노비면천하는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였을까
벼슬을 준다는 것도 아닌데
장영실은 오리지날 천출 아닌가? 관노출신인 그는 세종 때 정3품 상호군에 올랐다
천인에서 양인이 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며, 당사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흔한 일이다.
의녀야말로 천인이다.
마의에 나오는 혜민서 의녀만 엘리트의식이 있는 것 같다 .
(혜민서 의녀:지방관아 노비중에서 뽑아 올린다)
관기 겸직이 의녀이다.
외간남자에게 치료를 거부하고 죽는 여인이 속출해서 만든 게 의녀이지만 후대에 많이 변질되었다
내의녀는 정해진 급료를 받아갔지만, 간병의녀의 경우에는 20명 중 전달에 점수가 많은 자 4명에게만 지급한다는 기록이 있다
3월 18일 방영분 점점 더 이상하다.
포도대장이 어느날 좌의정이 되었다면 정상인가?
새로 나타난 좌의정이 관찰사(도지사란 친절한 자막과 함께)에서 좌의정으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관찰사는 종2품으로 포도대장, 상선등과 품계가 같다.
차관급 대감도 아니고 영감이라 불리는 계급이다
그 다음이 정2품 이제 부터는 대감이라 불리는 자리를 10여년 거쳐 그것도 운 좋은 사람만 정승이 된다.
정승은 정 1품이다. 같은 정1품이라도 대광보국숭록대부/ 보국숭록대부 중 대광보국숭록대부라 부른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모두 동일하다 (정1품도 2단계 그중 상위) 하지만 서열은 있다
영의정 다음 자리 좌의정 그 다음이 우의정이다.
참고로 구암 허준은 정1품 보국숭록대부에 제수되었으나 신하들의 극력한 반대로 철회되었다.
허준은 죽고나서 정1품 보국숭록대부에 추존되었다.
드라마가 끝나려 하니 걱정이다.
현종이 33세 죽는다 , 그때 백광현은 49세 (월요일 현재 아직 장가도 못간 총각)
사실 100년만해도 40이면 노인대접을 받았다.
앉았다 일어나면 옆에서 부액을 했다고 한다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어나는 것을 도움)
60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어 환갑잔치를 하는 것이였고
백광현이라는 어의가 있었다. 침의였고 종기를 잘 고쳤다 한다
강도준 등은 픽션이니 그렇다 쳐도
연대표라도 좀 보고 만들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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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의원을 약방이라합니다 - 오정일 (吳挺一)
승지ㅡ> 효종7년 대사간ㅡ>대사헌 ㅡ> 효종 8년 이조참판 ㅡ>
효종9년 병조참판ㅡ>대사헌ㅡ>예조참판ㅡ>대사간ㅡ>공조참판 ,효종 10년 지의금부사ㅡ>병조참판ㅡ>경기감사
현종 원년 도승지 (내의원부제조)ㅡ>개성유수, 현종3년 ㅡ>판결사
현종4년ㅡ>동지의금부사ㅡ>도승지(내의원부제조)ㅡ>동지의금부사
ㅡ>도승지(내의원부제조)ㅡ>경기감사 ㅡ>현종4년 12월 형조판서(사제제조)
ㅡ>都摠管ㅡ>형조판서 (관상감제조)ㅡ>판윤ㅡ>도총관......현종7년ㅡ>대호군
ㅡ>판윤ㅡ>현종7년 혜민서 제조ㅡ>형조판서 ㅡ>한성판윤ㅡ>현종8년 운검판윤
ㅡ>현종9년 공조판서ㅡ>형조판서ㅡ>판윤.......계속 관상감제조직 유지
현종11년 호조판서 (-->종묘제조,관상감제조,혜민서제조)ㅡ>行副護軍 - 서리(書吏)가 20인
종약서원(種藥書員)이 2인,
도약사령(?藥使令) 2명,
의이사령(薏苡使令)이 2명,
군사(軍士)가 8명,
수공(水工) 7명,
차비대령(差備待令) 의녀(醫女)가 10명,
내의녀(內醫女)가 20명[혜민서(惠民署) 의녀(醫女)중에서 선입(選入)],
수공이 2명, 침의청수공(鍼醫廳水工)이 2명, 종약군사(種藥軍士) 2명,
의약청수공(議藥廳水工)이 2명,
수고고직(水庫庫直)이 1명,
수고군사(水庫軍士)가 2명,
병조이속군사(兵曹移屬軍士)가 10명,
침의청군사(鍼醫廳軍士)가 1명,
의약청군사(議藥廳軍士)가 1명 - 의과에 급제한 사람을 임용하고 당상 이상은 어의라고 칭하고 정원이 없다.
당하관을 내의라고 칭하며, 12인으로 하고 그 중에 어의를 선발한다.
; 本廳用醫科人 堂上以上 稱御醫 無定數 堂下稱內醫 十二 其中抄御醫 [전율통보 이전 중앙관직 내의원]
예조에서 의녀 권과조를 아뢰기를, “…1. 의녀를 3등으로 나누되, 첫째는 내의라 하여 2인을 두고 달마다 급료한다.
둘째는 간병의라 하여 20인을 두고 전 달에 강한 점수가 많은 자 4인에게 급료한다.
셋째는 초학의라 한다.…” 하였다.
; 禮曹啓醫女勸課條…一 醫女分三等 一曰內醫 二人 每朔給料 二曰看病醫 二十人 以前月講畫多者四人給料 三曰初學醫…
[성종실록 권제89, 14장 앞쪽, 성종 9년 2월 16일(기유)]
한국고전용어사전 - 서열01위 법무부장관(장관급)
서열02위 검찰총장(장관급)
서열03위 청와대민정수석(차관~장관급)
서열04위 대검찰청차장(차관급)
서열05위 서울고검장(차관급)
서열06위 부산고검장(차관급)
서열07위 대구고검장(차관급)
서열08위 대전고검장(차관급)
서열09위 광주고검장(차관급)
서열10위 서울중앙지검장(차관급)
서열11위 법무부차관(차관급) - 당시 수의였던 인물에 대해 다음에 포스팅하겠습니다
너무 특이하고 재미있는 이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 관한 글을 읽으며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았습니다.
꼭 "녹정기" 위소보를 보는듯한 느낌 거침없고 능력이 많은
그는 영의정과 같은 정1품이었습니다 ,
영의정은 대광보국승록 이 수의는 보국승록이란 차이가 있지만 - 허접한 서양기사도 왕을 만나면 무릅을 꿇는데
제사 때, 상가집에서 절을 몇 번 하는가 2번이다.
교회다니는 사람은 않겠지만
임금에 대한 절은 4번이며 안 보이는 곳에서는 임금님 계시는 곳을 향해 절을 하지만
직접 절을 할 때는 "곡배"라고 해서
임금은 언제나 남쪽을 향해 앉으니
동쪽, 또는 서쪽을 향해 절한다 - 첫번째 황후 색니의 손녀 강희11세
皇后(4人)
皇贵妃(3人)
妃(11人)
嫔(10人)
贵人(5人)
庶妃(4人) - 11살 짜리가 결혼?
뭘 알았을까
당연히 알지
강희6년 9월에 첫아들이 태어났다
13살에 임신을 시켰다는 이야기
하지만 모두 태어나서 바로 죽고
강희11년에 태어난 아들이 1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