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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와 파의 개념

by JaeSoo posted Jul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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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들 중에서 한아버지에 삼형제가 태어 낫다면

 

혹은 임금이 성씨나 관직의 벼슬에 따라서 뿌리내고사는 혹 지명에

따라서

첫째~경력공파,

둘째~병사공파,

세째~좌랑공파.

그러다 보면 후손인 손자가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관직을

받았을제 마다 파가일어나고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즉 양달파, 음달파,도있습니다.

 

질문자도  유명인이 되면 후손이 본인의 업적을 높혀서 숭상하기

위한것이니 가문의 융성함이요  바로국가의 발전이될것입니다.

그렇다고 혈통이 바뀌는것은 아닙니다.   


1중시조 ~(문희공파)    2 호판공파  
 1자 경력공파  2자 병사공파  1자 판서공  2자 군수공파

       
위와같이 똑같은 성씨이지만 자기 할아버지의 숭조정신을  표하는것

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의 나무에 도 동쪽으로 뻗어가는 동쪽파 가지가 있으며

서쪽으로가는 서쪽파라고 하는 가지도 동일한 하나의 나무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같은 뿌리임을 생각해 봅니다

도움이 되였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3&dirId=31506&docId=116628782&qb=7ISx7JSoIO2MjA==&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8xyVdpySowssvXuLf8sssssstR-159012&sid=U8xU3QpyVooAADXvFmo



성씨의 유례


우리나라 성씨의 역사
우리 나라 성(姓)은 중국의 한자문화가 유입한 뒤인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성을 사용한 것은 한자를 발명한 중국이며, 처음에는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 산, 강 등을 성으로 삼았다. - 신농씨(神農氏)의 어머니가 강수(姜水)에 있었으므로 강(姜)씨라고, - 황제(黃帝)의 어머니가 희수(姬水)에 있었으므로 성을 희(姬)씨로, - 순(舜)의 어머니가 요허(姚虛)에 있으므로 성을 요(姚)씨로한 것은 이것을 싫증한다.
한국인의 성씨는 현존하는 것만 해도 2백70여 성이 넘고 각 성씨에서 나뉘어진 본관의 수효만 해도 1천여 본이 넘는다.
그 1천여 줄기의 혈통은 대개 신화적 존재로 이 땅에 출현한 몇몇 분의 시조에게서 핏줄을 이어받아 분파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쓰는 성씨는 가문의 특성과 역사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성쇠를 거듭한 뒤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생명력의 증거들이다.
그렇기에 성씨는 생명의 이름이고 자랑스러운 존재의 증명이다.
우리나라의 성씨는 기원전 고대국가가 형성될 무렵부터 여러 씨족의 이름으로 자생되거나 왕으로부터 사성되거나 아니면 외래의 성씨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하나의 표시이거나 기호이지 삶의 흔적과 생명의 형질이 집적되어 강인한 생명력으로 형성된 성씨의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다.
우리 성씨는 고대 이래로 일어나고 사라지기도 하면서 언제나 새롭게 이어진 생명의 이름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의 증명이되어 온 것이다.
성씨는 그 발원과 생활의 근거지 아니면 오랜 시간과의 싸움에서 살아난 사람의 발자국들이 모여 한 핏줄의 특성과 동질성을 이룬 창조적 생명의 대명사이다.
특히 한국인의 성씨는 한 핏줄의 부계혈통이라는 절대조건에 의해서만 부여되며, 혼인 등 어떤 인위적 또는 사회적인 사유로도 어보애거나 바뀌지 않는 생명의 절대 증표이다.
그래서 우리의 성씨는 한국인의 생명력과 정체성의 비밀을 밝히는데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성을 쓰게 되었는가.
여러가지 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만 하드라도 왕계나 특히 일부 계층에 한해서만 성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 역사상 고려조가 들어서면서 성으로서 사람의 혈통을 구분하는 일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지배층을 형성하는데 필요한 요건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고려 초창기인 1055(문종 9)년 "성이 있는 자에게만 과거시험에 응시 자격을 준다." 는 법령을 공포하기 때문이다.
11세기에 이르러 우리는 1천년 이상의 국가 경영의 체험한 민족으로서 혈통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려는 계층이 급속도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성씨개념이 확립된 것은 고려초, 중기 이후로 보아야 하는 것은 법적, 제도적 여건이 뒷받침되고 일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뿌리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으로 국가 구성원의 힘이 가문중심의 벌족세력 단위로 재편되고, 문벌의 세력구조가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는 권력구조에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되엇음을 의미한다.
한 가계에 속한 인물들의 명예와 능력이 결집되어 하나의 힘의 단위로 형성된 가문은 서로 대립 또는 경쟁과 견제를 통해 국가 사직에 역동적인 힘을 불어넣었고 역사발전의 동력을 이끌어 내는 힘의 지랫대 역활을 하게 되었다.

★저도 관심을 가졌던 터라 검색해본 경험이 있어 보았던것중의 일부를 올립니다.★
위의 내용은 지식인 과거답변검색으로 bg1979님께서 올리신것을 옮긴것을 밝혀두며
님께서 궁금해하시는 한 가문의 족보계열과 파벌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드립니다.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자면 시조(생성계기는 다 다름)로 부터 내려오는 피라미드식 구조
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는데 즉, 내가 만약 어떤성씨의 시조가 된다면 내자식들이 1대,
손자들이 2대...이런식으로 내려가니까 님이 말한 39번째 손자라는 말도 틀리진 않군요

그리고 하나의 본관을 가진 성씨안에서도 많은 파벌이 있는데 그것은 1대,2대,3대...
긴 역사를 거치며 크게 벼슬을 하거나, 왕이 직접하사하는 칭호를 얻거나,세인으로부터
큰 존경을 얻거나...하는 기타등등의 이유로 자기집안을 부각시키는 의미로 자손들이
파벌을 나눈것입니다.
근데 성씨의 유례를 보면 아시듯이 성을 본격적으로 쓰게된것은 삼국시대를 거치고
고려,조선으로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에 귀족,사대부적인 영향인지는 몰라도 파벌에는
벼슬로 구분지어진것이 가장 많습니다.

짧게 이정도만 설명드리겠습니다...이해가 되셨는지요??
참고 하시고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출처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302&docId=46656509&qb=7ISx7JSoIO2MjA==&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pid=R8xyVdpySowssvXuLf8sssssstR-159012&sid=U8xU3QpyVooAADXvF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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